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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제일 그립고 아름다운 것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5.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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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참 좋아한다. 과일을 좋아하는 친정엄마 덕에 우리 식구들은 철마다 노랑, 빨강, 알록달록한 과일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는 길목, 이제 막 박스를 뜯었는데도 귤이 말라가는 3월이면 이제 이 맛난, 만만한 귤을 한동안 못 먹을 생각에 서운한 맘까지 든다. 그래서 자연스레 과일 사는 단골집이 생겼다. 5일마다 읍사무소 후문에 천막으로 지붕을 엮여 좌대에 플라스틱 빨강 바구니에 과일을 듬뿍 담고 과일박스를 찢어 가격표에 5,000원, 10,000원을 제멋대로 쓴 강진아주머니 집이다.


나랑은 족히 띠동갑 정도의 나이라 언니라 하기도 이모라하기도 어색해하고 있을 때 나를 먼저 동생이라 불러줬다. 
그래서 그냥 어색하지만 언니라 불렀었다.
주로 퇴근길, 장이 파할 시간에 맞춰 과일을 사노라면 늘상 친정어머니 갖다 드리라며 따로 봉지에 사과며 토마토를 넉넉히 담아주었다. “37,000원인데, 끄터리 떼고 35,000원만 줘”


이러면 뭣이 남냐고 2,000원을 마저주고 빠져 나올라치면 검정봉지에 팔다남은 방울토마토 잽싸게 담아 내 과일박스에 또 담아주시며, 한사코 마다해도 주고싶어서 그러노라고, 있을 때 주는거라며 손도 크고 마음도 큰 정많은 사람이었다. 군청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자주 가지 못했고 특별히 과일이 많이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해 “몇 시에 가지러가니, 복숭아 한 상자, 포도 한 상자 남겨주세요”하면 팔지도 않고 꽁꽁 숨겨두고선 내 차에 실어주면서, 직장생활하면서 얘들 키우느라 고생많다며 살뜰히 챙겨줬었다.

 

항상 남편이랑 트럭 한 대 끌고 장에 오는데 아주머니는 장사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못하는 반면 아저씨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냄비 파는 아저씨랑 늘상 노닥거리기만 했다. 그런 아저씨가 맘에 안들어 아주머니는 눈을 흘기기도 하고 배달가라며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그는 늘 그 자리만 고수했다. 그런 아저씨가 유일하게 내가 과일을 살때면 어디서 보고는 달려와 수레에 과일박스를 옮겨 담고 내 차 트렁크에 실어주며 우리 이쁜 아줌마만 실어준다며 장난스런 웃음을 보여주곤 했다. 지금도 짧지만 반복된 그 반갑고 선한 인사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고, 두분의 티격태격한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 날, 과일가게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자네랑 나랑 10년도 넘게 좋게 살았는데, 이 일로 좋은 관계가 무너질까 걱정스러 죽것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 앞전 장날에 과일값을 안주고 간거 같은데, 자네가 줬다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친자매처럼 잘 지내왔는데 이 말을 해서 우리 관계가 멀어질까 너무 걱정스럽스럽다는 언니의 말속에 근심이 가득함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도 집에 와서야 돈을 안 준 것을 알았고, 다음 장에 만나니 그때 얘기하면 되겠다 싶어 별 얘기를 안했는데, 언니는 내게 말을 할까말까를 수만번 왔다갔다하며 고민한 모양이다.


이렇게 우리는 20년을 함께하며 소소하게 안부를 묻고 서서히 나이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일이 생기고 말았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텐트가 보일질 않는다.
무슨 일이지? 언니가 2년 전 뇌수술을 했는데, 그게 안 좋아졌나하고 전화라도 해봐야하나 하고 있는데 거의 한 달이 넘어서야 텐트가 보였다. 반가움에 한달음에 달려가 안부를 물었더니, 아저씨가 많이 아프단다.


폐암말기라 수술도 못하고 그냥 왔단다. 
”저 화상 불쌍해서 어짜까?“
웃고 있는 아저씨 얼굴이 핼쑥하다.
완도장을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며 울음 섞인 탄식에 뭐라 위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가 3월쯤 되었나 그로부터 두달인가 세달인가 지나, 아저씨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텐트가 보이질 않았다.
과일가게 전화를 찾아 걸어보니, 아저씨 보내고 마음 추스르고 있으며 여름 지나고 가을쯤에 다시 완도장에 가겠노라며 일부러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 10월이 가고 진짜 가을 11월이 지나도록 텐트가 보이질 않는다. 언니도 몸이 안좋은가보다하고 날 풀리는 봄이 되면 오겠지하고 막연히 기다렸다.


그러기를 한 해가 또 지나갔다.
우연히 들른 튀김집에서 언니의 소식을 들었다.
평소, 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튀김집하고 전화 연락도 하고, 전화하면 잘 받는데 전화 연락이 안되어 일부러 물어물어 강진까지 찾으러 갔는데 작년 가을에 집에 혼자 있다 심정지로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맘 추스리고 가을, 완도장에 다시 나갈나네 그때 또 보세" 하던 전화기 너머 씩씩한 언니의 목소리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벌써 3년도 더 지났는데, 오늘 문득 5일장 과일가게 부부가 생각났다. 밥한끼 먹어본 추억도 기억할만한 값진 선물 하나 준적이 없는데 우리는 20년동안 진한 정을 보듬고 살았다.


서로가 안보이면 별일없었냐며 안부를 물었고 날씨가 좋지 않아 과일이 많이 남아있어도,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돌아갈 길을 걱정하며 조심스레 하루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며 살았었다.


누구의 안부를 묻고 함께 고민하고 얘기를 꺼내는 일이 요즘 같아선 조심스럽다.
가정사, 개인사 묻는 일이 오지랖이고 전형적인 꼰대의 습성이라 너무들 쉽게 말해서 서로를 알려고도 가깝게 다가오는 이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말았다. 너나나나 손에 쥐어진 핸드폰에만 시선이 머물러 친구의 아픔도 기쁨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입도 닫아버리는 오늘의 세태가 슬프고 아쉽다.
오늘 유독 이 부부가 생각나는 건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일게다.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안아주는 정 일게다. 사람이 제일 그리운 것을 아름다운 것을..... 

 

 

조은정 산림휴양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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