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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 우도에서 꼬마상군으로 이름 날리며

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해녀 이야기 고순심 해녀(68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5.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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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보세요......?″
고순심 해녀와 만나기로 하고 청산행배를 타기 전 전화를 해도 아무런 답이 없다. 
배가 막 출항하자 전화가 왔다. 
″동생인가? 고추밭에 지주대를 세우느라고 전화기를 차에 놔뒀네야. 도착시간에 맞춰서 부두로 나갈라네.″


고 씨의 남편이자 청산면 주민자치위원장인 강상홍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주도 우도가 고향인 고순심 해녀는 일찍이 꼬마상군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열아홉살 때 청산도로 원정 물질을 와서 같은 우도 출신인 오늘날의 신랑을 만나 청산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저는 외할머니로부터 물질을 배웠어요. 그때는 물질을 잘해야 시집을 잘 간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그래서 누구나 그랬듯 저도 어릴 때부터 물질을 배우고 해녀의 길로 접어들었죠.″
고씨는 세상 인연이라는게 참 오묘하다고 했다. 


″제주 해녀들은 보통 18세가 되면 육지로 원정물질을 나서는데 19세 때 완도에 가면 물건도 많고 돈도 잘 번다기에 구좌읍 종달리와 성산 오조리, 우도 해녀 15명이서 꿈을 안고 완도로 왔어요. 그런데 청산도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우연찮게 신랑집에서 우도 친구들 3명이 살게됐어요.″
당시에 시아버지 될 사람이 제주 우도에서 완도 청산으로 이사하여 터를 잡고 해녀배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친구였는데 시아버지 될 사람이 제가 어릴 때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둘째 며느리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해 물질이 끝나고 추석 때 우도로 갈려는데 시아버지 될 사람과 신랑이 우도를 왜 가냐며 잡는 거예요." "가슴이 한창 부풀 때라 망설이다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엄청 반대를 한 거예요. 시아버님이 해병대 1기였는데 꼬라지가 좀 있었거든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의 반대에도 고씨는 동거에 들어갔고 20살에 아들을 출산했는데 신랑은 군대에 가게 됐다고 했다.


″아들을 출산했는데 군대 영장이 나온 거예요. 훈련을 마치고 간곳이 강원도 인제였어요. 배,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서 면회를 갔는데 그때는 교통도 안 좋아서 얼마나 멀던지, 이틀 걸려 면회를 갔어요. 얼굴은 아가씨 같은데 아들을 업고서 버스를 타고 그 먼 곳을 다녀온 걸 생각하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고씨가 1970년대 초 청산도에 정착하여 시댁식구들과 함께 난바르(배에서 숙식을 하며 여러 날에 걸쳐서 하는 물질)를 다닐 때는 해산물이 엄청 풍부했다고.     
″시어버지가 운영하는 배를 타고서 청산도 인근 섬과 소안도, 보길도등 여러 섬을 돌며 물질을 했습니다. 그때는 시어머니와 큰 동서, 시누이, 제주 해녀등 보통 15명이서 물질을 다녔어요. 소라나 자연산 전복이 어마 어마 했죠. 전복은 보통 500g이 넘는 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호 시절도 수산물의 대일 수출이 중단되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당시에 청산도만 하더라도 제주 해녀가 400여명 상주하며 수산물을 채취했어요. 해녀배도 10여척이 넘었고요. 물건은 잡은 즉시 부산의 도매상이 매입해 갔습니다." 
"그런데 수출이 중단되고 미역이나 김, 다시마 등 해조류 양식이 활기를 띠면서 원정 온 해녀들이 제주로 돌아갔어요. 일부는 여기 청년들과 결혼하여 정착하고요.″


당시에는 제주 해녀들이 많아 청산도 청년들이 수시로 구애를 했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면 청년들이 맛있는 것을 먹자고 불러요. 그러면 같이 바람도 쐬고 가끔은 닭을 잡아 소주잔도 기울이고 그러면서 정이 들었어요.″
고씨의 유일한 취미는 고스톱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스톱도 안 즐긴다고 한다. 가슴에 두 아들을 묻어서다.


″아들 둘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어요. 언제까지 물질을 할지는 모르지만 남편도 건강이 안 좋았다가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둘이서 건강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고씨는 고추밭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꼭 다시 놀러오라며 신신당부와 함께 남편과 자리를 떴다.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유영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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