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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는 이름 -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는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5.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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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학교에 전근해 오신 선생님이 대화 중에 나를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혹은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가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신상을 혼동할 리가 없을 터, 나는 곧 알아챘다. 


 내가 정년을 앞둔, 나이 많은 평교사이기에 그런 존칭(?)을 사용한 것이었다. 예전에 나이 든 남교사를 후배 남교사들이 그렇게 부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교장도 교감도 부장도 아니면서 나이는 많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선생님’이란 곧 교장도 교감도 부장도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어느 사이 내가 그런 불편한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부장님’은 ‘선생님’보다 존칭이 되었을까?
학교는 학생들과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니고 목표와 효율을 위해 운영해야 할 조직이기에, 규모와 특성에 따라 교무부 연구부 정보부 생활안전부 등으로 부서를 나누어 대표 격인 부장을 둔다. 부서의 부장을 맡게 되면 업무와 책임이 무거워지고, 그에 상응하여 얼마간의 점수와 보수를 받는다. 승진을 하려면 부장 점수가 필요하고, 때로는 경합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 ‘선생님’으로 불려왔다. 학교 안에서는 물론이고, 학부모님과 학교 주변 관계자들을 만나서도 한결같이 그렇게 불렸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내 몸의 일부이며, 내 몸통 속 심장과 위장 사이 어디쯤 붙어있는 장기인 듯 마땅하고도 익숙하다. 그런데 부장이라니.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그날은 못 들은 듯 넘기고, 다음 날 아침에 인사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나는 부장 아니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요.”
(앗, 그는 학생생활안전부장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러버렸다.)
20대 초에 교사가 되어서 40여 년을 살아왔다. 그 시절은 물질적으로 참으로 가난하고 황량했다. 창문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이치는 교실에 홑잠바를 입은 아이들이 가득 앉아있었다. 교재나 교구도 여의치 않았고, 물론 급식도 간식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루한 교실을 닦고, 꾸미고, 문단속을 했다, 3월에는 흙바람 부는 논둑 밭둑을 걸어 가정방문을 다녔다. 궁핍한 아이들 집마다 마당 장독대에 노란 수선화가 별처럼 총총히 피어있었다. 


회고하자면 가정방문 이야기만 해도 끝이 없을 터이다. 조회 시간에는 이 주일의 시를 외우고, 종례 시간에는 ‘상록수’와 ‘사노라면’을 합창하며 먼 동네까지 걸어가는 아이들 손에 영어단어장을 쥐어주며 배웅했다. 


세월이 지나 자동차를 갖게 되자, 학교에서 버린 책상과 의자를 싣고 공부방이 없는 아이들 집에 가져다주었고, 정원을 넘겨서 아이들을 태우고 답사 나들이를 다녔다. 여기저기 데리고 가서 세상 구경을 시켜주었다.


진짜를 하고 싶었다. 구호나 캠페인이나 보고서로 만드는, 표나는 것 말고, 아이들 마음에 스며들어 10년쯤 후에도 불쑥 기억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었다. 
동료와 경쟁하거나 점수와 등급을 따는 일 말고, 서로 도와서 함께 한 걸음 나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해마다 조금씩 더 깊고 그윽하고 노련하고 멋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마음은 그러하였지만, 소양과 노력이 부족하여 실수도 하고 후회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국어 선생님’이었고, 해마다 학급 담임으로 ‘우리 선생님’이었고, 도서실을 맡아서 책을 정리하고 함께 읽었다. 
요즘 사람들이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을 ‘일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그동안 일을 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냥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살아온’ 것 같다. 힘든 적도 없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즐겁고 재미나게 살아왔다.


교단에서 승진, 직위, 직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선생님’보다 ‘부장님’이라고 불러야 존칭이 되는 장면을 잠시 생각해본다. 아이들과 멀어질수록 직위는 높아(?)지는가? 아이들 곁에는 누가 있는가?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는가?
교단은 조금씩 사막처럼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배우는 기쁨은 사라지고, 지식은 시험에서 점수를 많이 얻는 기술을 의미하며, 편의와 물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당근을 던져주며 옆자리 선생님과 의미 없는 경쟁을 조장하는 차등 성과급제와 다면평가제와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수업 공개 실적을 승진과 해외연수로 보상해준다는 수업성장인증제(광주시교육청에서 시행 중이다. 아이들과의 수업을 열심히 공개하면, 아이들과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얻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제도들이 선생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나누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을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운 말이 되다니…. 


마흔이 넘고 쉰이 넘은 나의 옛 제자들이 지금 나의 제자들에게 카톡 선물하기로 간식대장 과자를 보내온다. 스승의 날이라고 전교생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온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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