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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변질된 사회 = 개천에서 용난다 vs 강남 8학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5.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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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 속담이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일반인들보다 우월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고있는 부모를 둔 강남 8학군 출신들이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주도권을 행세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회현상의 변화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능력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 성과주의)는 개개인의 인종·성별·특성들보다는 재능·기술·성취에 대해 보상을 받는 제도이다. 능력주의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보여주거나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보통의 경우보다 더 많은 돈과 명성, 영향력 등으로 보상을 받는다. 능력주의란 용어는 1958년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소설 < 능력주의의 출현 >에서 처음 등장했다. 


근대 자유주의 시대에 '신분이나 계급의 세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해야 한다'는 능력주의 이념은 현대에 이르러 '지위와 보상은 능력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라는 분배 원칙으로 형성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이동성이라는 핵심 원칙을 전제로 발전해왔다. 


개개인의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세습주의에 비해 개개인의 재능과 노력을 중시하는 것이 능력주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능력의 차이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객관적으로 판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능력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판별해내는 것이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결국 능력주의라는 승자 독식의 논리로 인하여 오히려 계층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 세대를 이어 고착화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출신성분에 따라 사회적 계층화가 이뤄지는 ‘신(新)세습사회’의 도래는 안타깝게도 세계적인 현상으로, 세습은 곧 ‘부와 권력의 대물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봉건사회의 유산으로 사라진 것으로만 알고있었던 세습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면서 근대 자유주의 사회 이후 민주주의의  목표인 자유와 평등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국가고위직에 지명됐다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사퇴하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을 통해 신세습주의의 부활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 민주주의사회는 능력주의가 변질되어 새로운 형태의 세습주의사회로 변하면서,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의 삶이 질이 달라지는 '부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자격이 필요한데,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의 든든한 재력이 뒷받침되어 자식이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아 그를 바탕으로 결국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애초부터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의 대물림은 단순히 개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현상으로, 부모가 자녀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기반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 집안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아무 노력 없이 대대 손손 부자가 되어 부자의 인생을 사는데 비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도 계층 사다리에 막혀 아무리 잘해봐야 중산층 이상의 인생으로는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능력주의와 세습주의는 공존할 수 있을까? 과거 왕정국가에서는 개개인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신분의 귀천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됐고, 그 지위는 대를 이어 물려받는 등 오랫동안 세습되어 왔다. 반면에 인간은 출신성분과는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관념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에 따라 근대 자유주의 이념은 신분이나 계급의 대물림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해야 한다는 관념이 대두됐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지위와 보상은 능력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라는 분배 원칙으로 형성됐고,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이동성이라는 핵심 원칙을 전제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인간의 능력에 따른 불평등과 합리적 차별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 결과 인간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능력주의는 부와 권력이라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들었 뿐만 아니라 능력이 대물림되는 세습주의라는 역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에서 만들어낸 능력주의가 아이러니하게도 세습주의의 부활로 나타나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평등을 훼손하고 있고, 이러한 부작용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원리지만 빛과 그늘을 동시에 가진다. 능력주의는 세습주의에 맞설 현실적 대안인 동시에 그 한계가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오늘날 역설적인 것은 능력주의가 세습주의로부터 역습을 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세습주의에 맞설 강력한 대안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동시에 강화하고 적절히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능력주의와 재분배정책이 필요하다. 


오늘날 능력주의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균등한 기회와 사회정의의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에 대한 불신이 점차 커지고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도 더욱 확산될 것이다. 능력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이 이룬 부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공동체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승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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