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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나 보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3.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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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앞 화단에 매화인지 그냥 벚꽃인지 연분홍꽃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번주가 3월의 두째주가 되는구나! 그리 빠른 개화도 아니었는데, 성급한 그 녀석만 나무랄뻔했다.


어느집 마당에선 벌써 목련이 봉우리를 꼭 안고있으리라. 그러다가 주인도 모르게 어느 아침날에 수줍은 색시 입처럼 살포시 미소에서 함박웃음으로 그 주위를 훤하게 밝히리라. 
늘 그랬던것처럼...
이렇듯 봄은 항상 빠른 걸음으로 와서는 맞이하려 손 뻗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마치 아이들이 갖고 노는 비누거품처럼...


그래서, 더 아쉽고 예쁘고 늘 기다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청명한 하늘까지 내줄때면, 이 답답한 구석자리에서 방범용 철창이 드리워진 사무실에 앉아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그리 갑갑할 수가 없다.
금방이라도 뛰쳐 나가 한바퀴 돌고싶기도 한데, 생각만 앞서고 몸은 그대로 앉아있다.


이렇게 이 봄도 마음만 바쁘게 흔들어놓고, 때론 촉촉이 나뭇가지에 봄비 스며들 듯 촉촉이 스며놓고 간다는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릴것만같다. 언제나 나혼자 기다리고, 짧은 만남에 목말라하고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만 가슴 저린 나만의 외사랑인 것이다.  
그래도 난 또 기다린다. 봄이 준 따스한 기운은 언제나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유년시절의 친구를 데려올 것 같기도하고, 아지랑이 이는 산너머엔 아직도 꼭 해야만하는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한다.


또, 봄바람에 부딪히는 살갗과 맞닿은 블라우스의 가슬가슬함이 상쾌하고, 언 땅위에서도 용하게 피어난 쬐그마한 보랏빛 제비꽃도 그렇게 앙증맞을수가 없다.
겨우내 몸을 둘러싼 무거운 외투 대신에 살랑살랑 꽃무늬 원피스도 입고 둔탁한 앵글부츠 대신 큐빅이 박힌 러블리한 핑그 구두를 신고, 늦가을부터 들고 다니던 갈색 빽대신 입술색과 깔맞춘 오렌지색 핸드빽도 준비해야겠다.
 어릴 적에 한 해의 시작은 3월이었다.


새학기에 새 담임, 교과서, 학용품, 친구들 모든 사물과 만나는 사람이 새것이었던 시기가 딱 이쯤이었으리라. 공책 표지에 정성스레 반, 번호, 이름을 적고 첫 페이지에 유독 공을 들여 글씨를 쓰고 거기에 빠지지 않았던 덕목 하나가 매년 일기쓰기였는데...


그 숙제는 아직까지도 못하고 머리 무거운 숙제로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직장을 갖고서는 3월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듯하다. 1월 2일 시무식을 시작해서 고작 새 업무일지를 받아들고 컴퓨터에 저장될 새 문서가 년도가 달리 정리될 뿐 큰 설레임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1월, 7월에 있는 정기인사 시기가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설렘보다는 긴장으로 먼저 와 있었다.
그래도, 계절의 변화는 한 해 한 해 나의 맘을 들었다놨다 하기도 하고, 얼어 붙은 내 심장에 따뜻한 물을 껴얹은 듯 녹아내리기도 했다.


군청 앞 당산나무의 새싹이 푸릇해가는 과정을 올해는 지켜보지 못할 것같다.
우리과(산림휴양과)가 외청으로 배치된 바람에...
늘 그 푸릇함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만나고 보내는 허기짐을 채우곤했는데...산림보호팀장 왈 “군청앞 당산나무 잎사귀가 푸르러지면 아! 드디어 산불 비상근무가 다 끝나가는구나” 해서 다들 까르르 웃었다.


산마다 연분홍빛을 선명히 드러낼것이며, 볼을 만지는 보드라운 바람은 연한 잎사귀를 기꺼이 장아찌의 재료로 내어줄 새 봄이 고맙고 짧은 만남이 아쉽기만하다.
장아찌 담을 간장과 식초, 설탕을 미리 사두어야겠다.
많이 만들어서 두루두루 봄을 나누어주련다.
내년 봄엔 두루두루 날 생각해주지 않을까?

 

 

조은정
군 산림휴양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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