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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람들 안부 물어줘 고마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2.0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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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한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는 영상을 봤다. 


그 뉴스를 끝으로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차례를 지내고 일찌감치 구봉산을 한 바퀴 걸었다. 산이라고 해봤자 두 시간 정도면 오르고 내려오기 충분했다. 조금은 지졌고 동시에 조금 기운이 났다. 하루 치의 운동량을 채웠다는 뿌듯함을 안고 아파트 근처의 산책로에 다다랐을 때, 은행나무 아래 긴 나무 의자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 조형물처럼 가만히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


먼 거리에서도 실루엣이 익숙했다. 보통 저 정도의 연세라면 자식들과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몇 걸음을 다가서자 백발을 모자 속에 숨긴 옆얼굴이 자주 뵙는 모습이었다. 반려견을 산책할 때 종종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뜯지 않은 우편물을 유모차 주머니에 넣고 나와 읽어 달라고 했다. 간혹 인사를 건네면 말꼬리에 말꼬리를 이어 사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들려주었던가. 그래서 의도치 않게 할머니들께서 명절을 어찌 보내셨을지 짐작이 됐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거리 두기도 없는 가족 모임이라고 떠들어대는 방송사가 무색하게 두 할머니는 외로움을 서로에 기대기라도 하는 걸까. 지나가는 사람도 드문 어중간한 시간에 냉기 속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 듯 아닌 듯,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생애를 다 살아 버린 미래의 나 자신과 마주친 듯, 순간 나른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이상한 진동이 심장을 울렸다. 미세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서서히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느낌, 톡톡 때리는 발화의 불씨와도 같은, 서러운 회한과도 같은 그 무엇이 내 맘으로 툭 떨어졌다. 은행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잎을 다 떨구어도 더 품위 있어 지고 당당해지는데, 그 나무 아래 앉아있는 사람은 너무 쓸쓸하다.


지금의 모습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삶이란 건 복잡하고 총체적인 그 무엇이다. 함께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함께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무언가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은, 관계는 미묘하며 복합적이기에. 


삶의 중심에서 가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는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니 두 할머니께서 불행한 명절을 보낸다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로 한다.
늘 그렇듯 얼굴에 웃음을 장착하고 인사를 건넸다.
"설인데 떡국은 드셨어요."
"요새 설이 설인가. 그냥 간단하게 한 그릇 했구먼"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나왔다고 했다. 


여기 앉아있으면 젊은것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자신들은 이제 너무 오래 살아서 나이도 안 세다 보니 몇 살 먹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바쁘다고 전화로 안부만 묻는 자식을 이해한다고 그러면서도 표정은 왜 쓸쓸해져야만 하는지.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홀가분해서 좋다는 말을 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바람 버튼을 누가 눌렀는지 쏴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외투를 통과해 살갗에 닿는 공기에 한기가 느껴진다. 따듯한 커피 믹스를 핑계로 할머니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 앉아 속에다 숨겨둔 얘기들을 나누고서야 할머니들은 각자의 집으로 가셨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늙은 사람들 안부를 물어줘서 늘 고맙구먼"

그랬다. 
그냥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저분들은 그걸로 고마운 거였다.
문밖의 세계란 언제나 평면으로 펼쳐진 사각형으로 정형화된 것이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그어놓은 사각의 테두리 안으로 타인을 들인다는 게 편치 않은 적도 있었다. 그냥 내가 갈 길만 보고 가는 것이라고, 한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고 내 삶으로 끌어들여도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


우연히든 필연이든 예기치 않은 관계에서 내 삶의 모서리도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지고 있음을 매일 경험한다.


삶이 한 편의 드라마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각자에게 주어진 긴 드라마가 NG 모음으로 끝났으면 한다. 싸우던 사람과도 마주 보며 한바탕 웃으며 끝내도 되지 않겠는가. 햇볕에 잘 말린 옷을 입고 출발했을 텐데, 어디쯤에서 온몸이 젖었는지, 언제부터 옷의 무게로 휘청거리게 됐는지도 모른 채 죽을힘을 다해 세드 또는 해피 엔딩을 향해 달려왔을 테니까.
너도, 나도 할머니도 마지막은 누군가를 웃게 하며 덩달아 자신도 웃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김지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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