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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웅, 장보고 vs 칭기즈 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1.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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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대 초 몽골 부족을 통일한 후 말갈퀴를 휘날리며 푸른 초원을 달려 몽골의 영토를 중국에서 아드리아해까지 세력을 넓혀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위대한 정복자인 칭기즈 칸. 


그보다 400년 앞선 800년대 한반도와 당나라·일본을 잇는 동북아 해상무역을 지배해서 해양상업제국의 무역군주(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로 추앙받고 있는 장보고. 


이번 몽골 동계 원정트레킹 중 현지에서 만났던 칭기즈 칸으로부터 해상왕 장보고 대사를 기억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게 되는 계기가 됐다. 2주일 동안의 일정 중 공교롭게도 처음과 마지막 날에 칭기즈 칸을 만나게 됐다. 트레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준비를 위해 머물렀던 울란바토르의 수흐바타르광장과 칭기즈 칸 국립박물관에서 칭기즈 칸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몽골 북서부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서 동계트레킹을 끝내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와서 귀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도 드넓은 초원지대의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칭기즈 칸 마상 동상이었다. 


13세기 대륙에 비단길을 다시 열어 동서양의 문물 교류에 크게 이바지했던 칭기즈 칸과 9세기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하고 한반도와 당나라·일본을 해로로 연결하여 바다의 실크로드를 일본까지 연장했던 장보고는 활동무대가 대륙과 해양이라는 장소적인 차이는 있지만, 당대의 세계질서를 새롭게 재편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칭기즈 칸은 군사적으로 탁월한 재능으로 급속하게 변하는 외부환경에 잘 적응했고, 마침내 북경을 포함한 금을 정복한 후 몽골족은 인근 여러 나라를 휩쓸었다. 


서방 세계와의 원거리 무역에 관심이 많았던 칭기즈 칸은 몽골 고원을 가로질러 동과 서를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이슬람 상인들을 특별히 우대했고, 이들을 통해 물자가 풍부한 서방과의 교역을 꿈꾸고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칭기스 칸의 군대는 동·서 투르키스탄에서 출발하여 멀리 남러시아와 서아시아의 일부를 차지했고, 동으로는 북중국·만주·몽골에 이르는 대제국을 구축했다. 특히 그가 통일한 몽골 제국이 중세와 현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장보고는 어린 시절 당나라 서주(徐州)에 들어가 당나라 군중소장(軍中小將)이라는 벼슬을 했었고, 훗날 고향인 신라로 귀국하여 임금을 알현하고, 군사 1만 명으로 청해진(淸海鎭)을 지키는 청해진 대사가 되어 해적들을 물리치고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며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던 인물이다.  


불세출의 영웅인 두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떨까? 칭기즈 칸의 몽골 부족의 평정과 세계 정복 원정은 31년간 나라 안팎에서 꾸준히 진행됐다. 그는 세계역사에 있어 걸출한 영웅인 것은 분명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고 존경하지만, 반면에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는 등 역사적인 평가도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나뉘고 있다.


긍정적인 평가는 칭기즈 칸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동서양 역사상 최우수 전략가’ 등으로 평가받고 있는 등 군사전문가와 문인들 사이에서는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는 몽골 침략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당했던 중국·러시아·중동·서유럽 사람들에 의해서다. 그들의 기록에서 칭기즈 칸을 ‘잔인한 살인자’·‘문명의 파괴자’라고 표현하는 등 극단적으로 폄하하고 있다.


21세기를 앞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가 11세기 이후 지난 천 년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세계 문명권의 80%를 지배한 진정한 세계 제국의 건설자인 칭기즈칸을 '밀레니엄 히어로'로  선정했다. 아쉬운 것은 지난 천 년 이전인 9세기에 활동했었던 관계로 장보고가 선정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보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동북아 3국에서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한·중·일 3국의 정사(正史)에 모두 기록된 우리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의 하버드대 교수였던 동양사학자 라이샤워(Reischauer)는 장보고를 ‘해양상업제국의 위대한 무역왕’이라고 칭송함으로써 역사 속에 뭍혀있던 그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청해진을 설치해서 해적을 소탕했고 독자적으로 중국과 일본과 해상교류를 함으로써 해상왕국을 건설했으며, 그 바탕에는 당나라와 일본에 비해 앞선 조선술과 항해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뛰어난 전략가였고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모험심과 개척정신을 갖춘 '바다를 경영한 최초의 세계인'으로 우리 역사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두 영웅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평가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함부로 따라잡을 수 없는 대륙과 바다를 장악했던 불세출의 위대한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바라건데 장보고 대사의 위대한 도전과 개척 정신을 이어받은 청해진의 옛터에 살고있는 후손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야하며, 그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나라 국운 상승의 대열 앞에 서서 이끌고 갈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승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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