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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나는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1.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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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1월에는 1년 중 11월을 가장 좋아한다고 썼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서 이제 12월도 다 저문다. 감상에 빠지는 글은 평소 경계해 왔지만 시간 배경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한 해를 보내는 소회에 젖은 글이 되고 말 듯한 예감이 든다. (‘어쩔 수 없음’이라는 복병 혹은 허방이 생의 갈피마다 얼마나 많이 숨어있는지 이제는 모르지 않는다.)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는 세월을(‘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도 있지만 그래도 기어이 물과 바람을 끌어다 비유한다.) 물리적으로 나누고 또 나눠서 단위를 만들고 수치를 헤아리며 일상을 만들어 생을 건너간다.


작년 이맘때 나는 광주 시내 한 종합병원 병실에 있었다. 12월 하순, 마감이 다 되어서야 받은 의무적 건강검진에서 작은 암이 발견되었고,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의사가 ‘올해를 넘기지 말고 수술하자.’고 서둘러줘서 헐렁한 면 환자복을 입고 수액을 맞으며 연말연시에 강제 휴식을 했다. 


내가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방종한 일상을 보내다, 문득 멈추어 자신을 성찰하며 주위를 돌아보는 기회였다. 이런 표현은 사실 1년여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여유를 부리며 할 수 있는 말이다. 


의사 언니는 병원에 상담실이란 이름으로 작은(사실은 작지 않았다.) 차실을 차려놓고 있었는데, 종종 수술환자들을 불러 작은 의식을 치러주었다. 광대무변 우주 안의 나, 먼먼 조상의 기운(DNA라고 했던가)을 이어받은 나, 가련하고도 소중한 나를 잘 안아주라고 한 것 같다. 그 순간에는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는데 이제는 느낌이 흐릿하다. 다만 방사선실과 검사실과 각종 창구로 번잡한 병원 건물 안에서 차실은 다른 세상인 듯 아늑한 공간이었다는 느낌은 선명하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그들도 병을 이기고 올 한 해 잘 살아냈기를…. 지금도 병원 대기실에는 갑상선암과 유방암을 않는 여성 환자들이 가득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늦은 퇴근길에 의료원과 종합병원 건물을 지나며 불이 환한 병실을 올려다본다.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사실 모든 죽음은 예외 없이 아까운 나이에 갑자기 오는 것이다.) 자식이 여섯이나 있었지만, 누구도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했다. 


만일 우리 여섯 중 누가 아팠다면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끝끝내 살려냈을 것이라는 가정에 우리는 오랫동안 자책했다. 하지만 슬픔은 생이라는 배가 항해하기 위한 평형수라고 했던가. 그저 우리는 당신의 한 조각들이며 우리가 바로 당신이라고, 그러므로 당신은 죽은 게 아니라고 여기며(혹은 우기며) 젊고 아름다웠던 그를 추억한다.


오늘도 병실 복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입원환자의 가족들을 마음으로 위로한다. 완치와 쾌유가 신의 영역이라면, 어제보다 조금 차도가 있기를, 아니면 더 악화는 되지 않기를 통증이라도 덜하기를 가족의 마음으로 빌어본다.


나는 여러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일어났고, 다시 또 한 번의 세모를 맞는다. 
잠재적 암환자이지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올해 괜찮았죠? 내년에도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청소를 한다. 청소는 15분 만에 행복해지기 비법이란다. 청소를 하면 천국이 된다. 현관에 쌓아두었던 빈 택배 상자들을 납작하게 눌러 내놓자. 베란다에 쌓여있는 빈 병, 주방 수납장 안의 유통기한 지난 가공식품들도 꺼내자. 욕실도 들여다보자. 


치약 자국이 묻은 거울도 말끔하게 닦고 거실 바닥에 얼룩도 손걸레로 박박 닦는다. 올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의류수거함에 내놓으면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돌아갈 것이다.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 물건과 다 읽은 책을 나눔하고 집에 공간을 만들자. 빈 공간으로 새해 새 복이 들어올 것이다. 창문을 열어 찬 바람을 들이자. 앞문과 뒷문을 마주 열어 집안 곳곳에 고여있는 공기를 내보내자. 


휴대폰도 청소하자. 사용 안 하는 앱은 삭제하고, 오래 묵은 사진과 의미 없어진 사연도 지우자. 마지막으로 휴지통을 비워서 빈 공간을 만들자. 반가운 소식들이 벨을 울리며 마구마구 쌓일 것이다. 
새 달력을 걸고, 새 다이어리를 편다. 옷장에서 제일 아끼는 옷을 찾아 입고, 주방 선반을 열어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잔을 꺼낸다. 물을 끓여 뜨거운 홍차를 내려 담아 들고 창가 의자에 앉는다. 아, 음악이 있어야 한다. 


FM 라디오를 켜면 시간대별로 어울리는, 몸에 좋은 제철 음악이 하루 종일 나온다. 잠시 이런 호사스러운 시간을 가진다고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척추를 곧게 펴고 앉아 깊은숨을 들이쉰다. ‘나는 살아있다, 지금 여기.’ 오래지 않아 지수화풍으로 흩어지고야 말지라도, 지금은 살아서 이렇게 앉아있다. 미래는 매 찰나 내 앞으로 와서 지금이 되고, 나는 들숨과 날숨으로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한다. 가족과 친구와 지구촌 이웃과 가여운 뭇 생명들과….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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