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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팬 날 다시는 개패지 않으리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12.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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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털이 난 동물들은 참, 따스하다.
집밖은 겨울왕국이고 집안은 동물왕국이다. 동짓날 긴긴 밤 두고두고 녹지 않을 것만 같은 하얀 눈이 왔다.
우리집에는 푸근한 손님들이 첫눈처럼 왔다.


선한 얼굴을 하고는 말은 허벌나게 안 듣는 기골이 장대한 감자다.
감자는 태어난지 벌써 6개월 온지는 4개월  됐다. 적응기 끝내고 안착했다. 강아지에게 조차 상처 받을까봐 거리를 두었다. 


마음 주지 않으려고 벽을 친 것을 감자가 알았을까. 말짓을 지진나게 했다. 
참고 누른 것은 반드시 터진다. 그러면 안되는데.  같개패듯 개팬 날 다시는 개패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너는 혼이 있다는 동물 아니더냐. 11월 기도문에 서언하듯이 감자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 했다.


그리고 앓아 누웠다. 미움도 사랑의 한 감정이라지.감자야,나무는 먹줄로 곧아지고 사람은 충고로 성스러워진다고 하니, 너는 사랑으로 충견이 되어 줘.
가을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느티나무 잎새가 우수수 쏟아지는 놀이터 의자에 길냥이 앉아 볕샤워 중 이었다.저 멀리서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아이가 폴짝폴짝 "야옹이다" 달려왔다.
사람의 손이 탄 길냥이가 몸을 살포시 낮췄다.


그 까슬함과 그 나른함을 반반 섞어 낙엽 위를 한 번 데구르 느리게 구르더니 잠깐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접는 게 선하게 보였다. 놀고 싶은 아이가 바람에 이는 낙엽처럼 또르르 길냥이를 따랐다. "놀자 야~옹아~! "피곤타, 아~옹! 경계하는 굵직하고 짧은 저음이다. 길냥이의 동작에 노련미가 묻어났다. 낙엽 위를 호랑이 보폭으로 어슬렁 걷더니 저리 가~어~흥.


길냥이가 늦가을 바람처럼 휘리릭, 사라졌다. 여기저기 구르는 낙엽쓸던 빗자루가 하얀 눈을 이어 쓴다.
추위 깊은 겨울이 하얗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했던가. 그 쯤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작은 생명이 나에게 운명처럼 왔다.손이 많이 가는 아들 덕분이다.


제법 자기 힘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 같아 대견하다. 새벽 문이 열리고 아들이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새끼 길냥이었다.
그런데 참 무슨 조화 인지 모르게 사랑스럽다.일하는 가게 천장에서 떨어져 어미 잃은 새끼란다.


사람의 손이 타면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거두지 않는다는 억지스러운 말로 키워야겠단다. 무슨 모성애가 그러냐 싶기도 하지만. 


옛날 어릴 적에 갖난 강아지를 만지거나 들여다 보면 어미개가 모두 물어죽인다는 말을 들었었다. 부정을 타서 그런다고 했는데 아마도 예민한 상태의 급스트레스로 인한 산후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첫째는 강아지 감자 둘 째 길냥이 땅콩이 사랑스러운 둘은 손주 같다. 애들 키울 때 놓친 마음이 깊은 곳에서 봄풀처럼 새록새 올라오는 듯 풋풋하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 일 때 생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헛되지 않다.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프로이드의 명언이다.


부드럽고 여리고 작은 생명이 사랑스럽다.부드럽고 여리고 작은 생명을 보호하고 싶다.
여리고 작은 생명 땅콩이 자신을 하악질 하며 지키는 모습은 더욱 사랑스럽다.
내가 너를 보호해 주겠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내안에 너 있고 너안에 나 있다. 너는 나다. 길냥이 어미처럼 애옹애옹.


이러다 집이 동물왕국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웃음이 났다. 그거다. 하루 절반을 웃자.그다지 웃을 일 없는 일상에 찾아온 소소한 기쁨이다. 불처럼 따스하고 물처럼 온유하게 물불 가리며 잘 살아보자.

 

우당탕 남아 도는 게 없이 사는 게 아닌가하는 은근한 걱정 접기로.
감자와 땅콩 만장일치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쉽지 않을 거다.사는 건 원래 만만치 않으니까.감자와 땅콩 노는 모습이 동장군을 잊을 만큼 사랑사럽게 평화롭다.
혼란은 사라지고 고통은 생각 나지 않는다.


새벽 냥이가 내주위를 맴돌 때 내일 하느냐 아는체 안 했다.
빤히 나를 바라본다.그냥 내 할 일을 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불러도 안 나온다.
"땅콩,토라졌냐~옹?땅콩,숨었냐~옹?" 가만히 조용하다.
털복숭이 땅콩, "사랑해도 될까요" 묻기도 전에 사랑에 푹, 빠졌어요.

 

이의숙 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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