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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가 너에게 그리움이 되는 여운으로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1.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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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담에 안팎에서 호박꽃 부드럽게 핀다. 어린 호박잎은 아주 연한 작은 호박을 감싼다. 호박꽃 냄새는 그냥 스쳐가도 길게 남는다. 무덤덤하게 피어 그리 관심 있는 모양은 아니다. 


호박꽃은 두터운 사랑을 감싸고 있다. 불현 듯 마주쳐도 꽃 안에 암술이 보일 때도 있다. 허름한 토담에서 그리 예쁠 것도 없이 핀다. 그래서 아름답다. 외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정이 간다. 아주 간단한 디자인도 아니다. 아주 복잡한 액세서리도 없다. 일상의 평온한 가운데 네가 있어 행복하다. 주고받는 데에 물질만은 아니다.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닌 데에도 정이 오고 간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이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향기롭다. 호박꽃은 퇴색되어가는 양철지붕과 비와 햇빛이 잘 어울린다. 빗소리를 지붕에 들을 수 있고 넓적한 잎에선 영양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햇빛을 받는다. 


지금은 가을무가 맛이 잘 들었다. 무나물을 보니 호박 나물이 생각난다. 그 부드러움이 서로 닮았다. 말 잘하고 생을 많이 아는 것보다 아름다운 천성이 보이는 사람이 좋다. 때가 되면 천성이 배어 나오고 말을 인내할 줄 아는 이가 가을배추인데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배추가 차근차근 속이 들었다. 침묵 속에서 자기만의 내면의 향기가 가득 채운 이는 배추와 무다. 일상에 너무 흔하다 보니 그 소중한 가치를 잃고 사는지도 모른다. 호박을 보면 어머니 얼굴 같기도 하고 착한 아내의 마음 같기도 하다.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될 땅에서 가족들을 위해 경작한다.

 

호박꽃 그 부드러움이 노란 호박으로 만들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다. 빛이 있으면 호박 넝쿨 뻗어 노란 평강의 하늘을 만들었다. 호박은 산후 부종을 빼주는데 자주 활용하므로 산후조리 음식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호박의 이뇨 작용을 고려하면 산후의 어혈과 부종을 치료하는 데 좋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과 함께 있으면 더 따듯해진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변해버린 시간을 더 사랑하고 더 많이 느껴지는 진정성이 있다. 


일 년을 살고 이렇게 호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처럼 정감이 간다. 자가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면서도 자연의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다. 서로 살아있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모든 이야기가 너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갑자기 나타나도 그리 놀라지 않은 꽃은 호박꽃이다. 그러나 길게 여운을 준다. 
평상시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것들이 깨어난다. 그래서 삶은 연습도 없이 찾아오는 것일까. 하루에 몇 번이고 세월의 흔적을 보고 산다. 노란 호박은 11월에 남쪽에 떨어지는 해와 닮았다. 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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