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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너의 꽃잎 사이로 가을이 왔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9.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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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절을 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 추억의 길이 되었으니 지나버린 것에 대하여 아련한 기억으로 가자. 
코스모스 길 따라가던 가을바람과 은물결도 있다. 가까이 가야 보이는 쑥부쟁이 들꽃도 보랏빛 얼굴이 너무도 아름답다. 비와 바람이 와서 눈물이 되어주었던 게 지금은 고실고실한 들길이 되었다. 


계절이 낳아 기르고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저만치 가을 길로 가고 있네. 화려했던 꽃보다 고운 말씨가 좋다. 이리저리 뛰어놀던 강아지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들꽃이 좋다. 가을바람이 흔드는 곳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코스모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내 마음의 노래다. 불쑥 내놓았던 얼굴도 이젠 조용히 저만치 앉아있는 이가 좋다. 사치의 계절이 가고 검소한 계절이 왔다. 너무 과하게 입었던 옷도 이젠 속 뜰이 보이는 언어가 좋다. 마당 한가운데에 가라앉은 가을 햇빛 위에 한 보자기의 투명한 가을 고추도 자기의 속살이 드러내 보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인생이 있다. 한마디에 말도 묵직한 진실이 보일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한 무더기로 봤던 추억도 이젠 꽃잎 한 송이로 본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면서도 눈물은 오히려 많아졌다. 지나온 관성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가까운 것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을의 들꽃들은 국화과가 많다. 대표적으로 쑥부쟁이다.

 

그리고 가을 길가에는 코스모스다. 그 많았던 코스모스 길은 없다. 그래서 가을이 성큼 오기 전에 몇 그루 옮겨 심어 놓았다. 드문드문 심었는지 건실하게 자란다. 누런 가을바람이 흔들릴 땐 참으로 아름답다. 무엇보다 꽃잎 꽃잎 사이에 가을 풍경이 보인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깨끗한 것들만 남아있다. 나무는 열매를 맺고 가을꽃들은 투명한 향기만이 남긴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그리움이 훤히 묻어난다. 
말을 많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온갖 풍경들이 대신 말을 해주니까. 겉으로 내보이는 정보다 내 안에서 오롯이 혼자만이 간직하는 정도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노란 들판이 내 안에서만 얘기한다. 코스모스 향기는 봄에 씀바귀꽃부터 시작됐다. 쑥 냄새로 자욱한 가을 길에서 얼굴을 깨끗하게 씻는다. 


더 깊게 마음에서 기도하기 위해서다. 점점 날이 짧아지지만 가장 깨끗한 날은 길어진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고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모가지가 길어서 가지가 휘어지는 계절. 가장 정직한 것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지도 못이기는 척하는 것일까. 가을 햇빛이 아무리 많이 부서져도 코스모스 길 위에서는 한 곳으로 모아진다. 가을의 무게는 투명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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