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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청해요양원에서 구순 노모를 위한 감동의 잔치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2.09.0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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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하나가 편집국에 전해졌다.
흥겨운 노랫소리와 함께 만수무강하라는 말소리. 
그런데 무언가 가슴 한 켠이 짠한 느낌들. 
코로나 시대를 맞은 진풍경. 혹시나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자녀들이 유리문 밖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는 정경. 

 

이 아름다운 정경은 지난달 20일 청해요양원에서 요양 중인 어머니를 위해 자녀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면회가 어려워지자 요양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는데, 자녀들은 올해 구순을 맞은 이순란 노모를 위해 요양원 입구에 잔치상을 준비했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노모는 자녀들이 준비한 케익과 잔치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식들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어머니를 위한 공연을 시작했다.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녀들은 코로나로 인해 손도 잡지 못하는 현실에 눈시울을 붉혔다.

 

 

지켜보는 요양원 관계자들 또한 무척이나 감동스러운 정경이었다고.


저 아름다운 정경을 보고 있자니 그가 떠올랐다.
'이런 생활 속에 근심 걱정 없으니 어부의 생활이 최고로다. 조그마한 쪽배 끝없는 바다 위에 띄워 두고, 인간 세사를 잊었거니 세월 가는 줄 알까'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 이 어부가는 훗날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부가'로 유명한 농암 선생은 70살이 넘은 나이에도, 90이 넘은 아버지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벌였다.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아들과 손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농암은 80이 넘은 고향 어른들을 모두 모아 때때마다 마을잔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는 양반은 물론 상인, 심지어는 천민들까지 다 모였다.


<중종실록>을 쓴 사관은 농암 이현보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이현보는 일찍이 늙은 어버이를 위해 외직을 요청해서 무려 여덟 고을을 다스렸는데 모든 곳에서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농암이 외직을 자청한 것은 바로 어버이의 부양 때문이었는데, 완도군청 고수영 팀장이 홍보팀장에 있을 때언론인과 너무 잦은 술자리 때문에 어머니를 잘 못 모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농암은 왜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피웠을까? 그것도 어린 자손들이 가득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는 이현보가 춘추시대 때 초나라 은사인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그대로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자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모셨다. 
그는 나이 70살이 넘었음에도 오색찬란한 옷을 입고 딸랑이를 갖고 어린아이처럼 놀면서 부모를 즐겁게 했다. 뜻과 마음이란 변함이 없는 것. 농암의 효성 또한 그 못지 않은데, 농암은 죽은 뒤 효절공(孝節公)의 시호를 받았다.


이날 노모의 구순 잔치에 함께했던 최은영 씨는 "부모님에게 나는 그리움으로 숨죽인 통곡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면서 "반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그리움에 생각나는 것은 그 흔한 야단 한 번 없으셨고 꾸 중 한 번  안하셨다는 인자함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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