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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빛은 잠시 스쳐가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7.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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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에서 채송화 몇 그루 사 왔다. 가까운 시선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압도적인 풍경이 감동을 주지만 대문 옆에 채송화 몇 나무만 있으면 된다. 꽃밭을 화려하게 만들면 시선이 집중이 안 된다. 


지날 때마다 슬쩍 보고 지나가도 여운이 남는다. 꽃나무가 크면 꽃을 볼 것인가 잎을 볼 것인가 구별이 안 간다. 
채송화는 지난 세월에서 많이 보아 온 꽃이 특히 장독대 옆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산에 들에 야생화같이 생명력은 없다. 


그러나 집 화단에 듬성듬성 심어 놓으면 자연스레 공간이 나온다. 잎을 따다가 물 빠짐이 좋은 곳에 꽂아 놓으면 된다. 매일매일 물을 주고 나의 일상을 들려다본다. 꽃도 보고 내 마음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나직이, 천천히 하늘도 보고 먼 산도 보고 앞 뜨락에 피는 채송화를 본다. 외래 채송화가 많이 들어와 있다. 


길가에 관상용으로 잎이 길게 갈라진 미국 채송화, 일본채송화, 서양채송화가 있다, 이중 겨울에도 핀 채송화가 있다. 산속에 하늘말나리가 비가 오면 비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갈라진 잎으로 흘러내린다. 채송화도 비가 오면 꽃잎을 닫는다. 또한 뜨거운 오후 날씨에는 잎을 닫는다. 하늘말나리는 숲속에서 있고 잎도 두껍다. 


꽃은 그 시절에 맞게 핀다. 산속에 꽃들이 마을로 내려와 어느 뜨락에서 앉아 채송화와 눈빛이 마주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일이겠지. 옛집을 찾아 분꽃, 채송화, 봉선화를 생각한다. 그때 여름을 한참 담고 있다. 진정 꽃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 그리운 얼굴을 기억하고 있겠지.

담도 없는 어느 작은 집에서도 채송화는 바다를 보고 있었어. 고단한 삶에서도 한 송의 정물화를 그리고 있었어. 삐그덕 하는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여자아이들이 동요 노랫소리. 그 앞에 분꽃과 채송화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 이 세상에 이름이 없는 것들은 없다. 내 집으로 들어오면 이름이 바뀐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린 모습이 내 마음속에서 이름을 지었다. 이 꽃을 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바다와 같은 생각과 세계 평화를 위하는 바람은 물론 이것도 중요하겠지만 뜰 안에서 조용히 꽃을 보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느 정도 간격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사이로 인간적인 향기가 피어난다. 가장 낮게 마당 가에서 드문드문 피었다. 빨갛게 노랗게 피었다. 흙 속에 조용한 풍경이 의자에 앉아 푸른 하늘을 보며 내 마음을 그린다. 다소곳한 곳에서 8월의 눈이 하늘을 보고 있다. 어느덧 숲속에서 내려온 꽃이 뜨락에서 우리 집 꽃이 되었다. 숲속에 빨간 나리꽃을 설령 이곳에 없어도 옴 몸에서 그 향기가 아직은 남아있다. 8월의 눈꽃은 울지 않기에 추억을 이야기하고 남은 세월 남아서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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