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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단아한 여인을 보고 있는 듯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7.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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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나를 찾기에는 시간이 나를 버리고 간 곳이다. 또 다른 시간이 내 앞에 앉아 꽃으로 피었다. 대지를 뚫고 바람이 부는 곳으로 꽃향기는 흐르고 흰 구름으로 다시 꽃이 되었다. 숲에서도 규범이 있고 규칙이 보인다. 
그래서 작은 꽃들이 살아남는다. 사람들이 먼 기억으로 사라지는 날에 숲에서는 다정한 이름이 있다. 가난한 농부가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이어지고 있다. 


농부들이 가장 선한 언어를 사용해 지은 이름들이라 이웃집 아줌마의 이름 같다. 숲속에서 모든 언어들을 함축하고 있다. 
닭의난초, 며느리밥풀, 사위질빵, 꽃창포 등이 아주 친숙한 말들이다. 숲속의 질서는 아주 간단하다. 농부가 이름을 지어준 대로 서로 불러주면 된다. 아침에 높은음으로 시작하여 노을이 질 때 가장 낮은 음으로 마무리가 된다. 초록 잎은 시간을 채우며 가장 깨끗한 운동장을 만든다. 노란 원추리 꽃 옆에 꽃창포가 있다. 


바느질하는 단아한 여인을 보는 듯하다. 
키 작은 닭의 난초는 햇빛이 한 줄기로 펼쳐진 곳에서 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숲속에서는 그들만의 자연의 규범을 만든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지어준 이름은 가장 선한 이름이다.

 

이 이름이 자주 불러주었을 때 생동감이 돈다. “닭의난초님” 얼마나 신선한가. 그리고 얼마나 신비로운가. 숲은 신비로운 언어를 만들고 자연의 음을 찾아 음악을 만든다. 규칙적이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아주 평화로운 성을 만든다. 야생난에는 제비난초, 잠자리난초, 병아리난초가 있다.

 

우리 야생화는 어떤 형상을 본떠서 붙은 이름이 꽤 많다. 닭의난초도 그중 하나이다. 보통 동물 이름이 붙으면 그 동물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데 닭의난초도 꽃잎 모양이 닭의 부리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꽃잎이 이른 봄에 핀 춘란과 비슷하다. 꽃은 6~7월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핀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만의 숲속의 길을 만든다. 지나가면 도라지꽃 생각나고 한참 지났는데 생각나는 그 숲길에서 무슨 꽃이 피었더라 하는 그런 아쉬움이 소낙비가 되어도 좋으리. 


내 몸속에 나를 닮은 야생화와 함께 숲길을 걸어가고 있다.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만이 있지 않다.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살다가 별안간 나타나는 기억이 그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향기로 다가온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새롭게 태어난 꽃은 없다. 


지나온 날에 서러운 눈물들이 꽃이 된다. 숲속에 닭의난초는 목이 마른 중에 꽃을 피운다. 모든 조건이 완벽함에 꽃이 된 야생화는 없다. 꽃송이를 줄이고 줄인다. 단아하고 향기롭게 피우기 위해 몸 전체를 줄인다. 땅은 박약하지만 정제된 꽃잎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온 몸으로 피는 닭의난초를 가장 선한 농부가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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