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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면에 사는 덕자! 입안에 천사가 들어왔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6.3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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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안에 늘 비치돼 있는 숟가락 하나.  
옆에 누군가 타는 날에는 "웬 숟가락!" 피식 웃는다. 
그럼 난, 신호를 기다리는 틈에 곧잘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는 비밀을 누설한다. 구름 속에 숨은 해를 볼 적마다, 실눈을 뜨고 뭉게구름 위에 숟가락을 꺼내 얹는 놀이를 한다고. 


구름이 고봉밥을 떠서 파란 하늘을 먹여준다고 마음속으로 그린다. 
때로는 붉은 노을을 숟가락 가득 떠서 내가 먹곤 한다. 구름은 꽃 피는 봄날 연둣빛과 초록 사이에 가장 좋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과 잎이 떨어지는 초겨울 사이에도 그만이다. 이따금 폭설이 내려 겨울 하늘이 깨끗한 날 보는 구름도 멋지다. 이때 구름은 눈 덮인 산이 펼치는 흰 원피스처럼 순결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구름은 내 방 창가로 다가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숲에 내려온 산안개 사이로 엷은 구름 띠가 강을 따라 모락모락 피어 올라간다. 무슨 하얀 꿈이거나 모호한 환상처럼 여겨진다. 물방울이 모여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될 터여서, 구름을 물의 노래라고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도 몸과 정신과 영혼이 가벼울 수 있을까. 홀씨처럼 구름은 무슨 생각이나 하는 듯, 공중에 나풀나풀 날아간다. ​어떨 땐 아예 감쪽같이 산 능선 뒤쪽에 숨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땐 온종일 마음이 어수선하다.


구름 한 가닥 없는 하늘을 볼 적에도 그저 걱정이다. 구름이 비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내 몸은 꽃나무가 된다. 
저녁 무렵 빗물을 맞는 꽃나무를 지켜보라. 온몸이 비에 젖어 생각이 무척 무겁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
구름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일이 사람들 인생과 같다. 실체가 있지만 이내 시공간에 흩어지는 꽃향기처럼 가볍다. 


구름은 현실 속 또 다른 가상 세계인지도 모른다. 나는 소녀 때 편지글 마지막엔 꼭 ‘영원히’라는 단어를 썼다. 이때 나는 내 존재가 구름처럼 영원히 허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 무엇이 되길 바랐다. 구름이란 말속에는 산이 있고, 안개가 있고, 숲속 새소리가 난다. 


​​구름이란 말은 숲에서 태어나 끝없는 창공으로 날아가 꿈을 일깨우는 계시가 된다. 
구름 위를 나는 동안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이 공항 활주로가 되었으면 하고 우스운 상상까지. 


구름 택시를 타고, 별나라까지 간다면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엉뚱한 웃음을 짓기도. 구름은 언제까지나 빨주노초파남보 그 아름다운 무지갯빛 환상을 심어주는 이미지다. 기쁨은 우연히 찾아올 때가 가장 정답게 느껴진다. 굳은 내 입가에 웃음이 핑그르르 번진다.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오늘은 마음껏 상상하며 나래를 펼친다.

 
땅에서 구름을 올려 볼 적에는, 할 일 없이 다니는 줄로만 알던 뭉게구름이, 창가 자리에서 바라보니, 저희끼리 무슨 할 말이 많은지 뒤엉켜 스크럼을 짠다. ​
​기분이 좋은 날은 먹구름을 보아도 마냥 행복한 기분에 들뜬다. 우울한 날은 밝은 양털 구름도 무겁고 어둡게 찌푸린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마음에 따라 다르지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일도 마음대로 안 된다. 소녀 시절 고향 개울가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곤 했다. 


엉키고 풀리고, 다시 뭉치는 모양은 종잡지 못했다. 어떤 날은 내가 좋아하는 그 애 얼굴이 되기도 하다가, 이내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 모습으로 바뀐다. 구름은 내게 너무나 자유로운 존재로 비췄다. 뒷산을 넘어 저 멀리 도시로 달아나고 싶었던 나는, 빨리 구름에 올라타 도시처녀가 되는 상상을 했다. ​

 

완도 노화도에 도착했을 때, 소안 구도의 머리 위로 손오공을 태운 근두운이 총알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 어지러웠다. 
하늘 구름 사이로 보니 물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늘에 내 발이 둥실둥실 떠 있다고 생각하면 아마 구름도 나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며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


땅에서 구름을 보면 육신(肉身)을 떠난 혼령처럼 떠올린다. 
막상 창공에서 보는 크고 작은 구름은 뭐랄까, 공중에 뿌려진 흰 꽃이 맺은 씨앗처럼 보인다. 저마다 흘러 다니며 궁전도 짓고, 마을도 이루고, 사랑하는 것들 이름도 부르는, 그 어떤 사연이 깃든 구름처럼 와닿는다. 바다 위에는 파도하고 구름이 두 팔을 맞대고 펼쳐졌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동안 생각은 물거품이 된다. 조금 앞서까지 구름바다 빛깔은 청록빛을 띠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삿갓구름은 여인이 입은 세모진 치맛자락을 꼭 잡은 듯했다. 구름은 지상에서 나한테 은유하는 구름이 되기도 하고, 직유처럼 구름이 되어 주는 마술을 부리는 존재. 


살면서 가장 아름답고 맛있는 구름은 소안면에 있었다.

 

그건, 이름도 생소하면서도 친근한 덕자.

상상을 초월한 두툼한 병치를 완도에선 덕자라 불렀는데, 누군가 처음 잡아 본 큰 병치를 사랑했던 마을 처녀의 이름을 따다 붙인 것처럼. 

덕자는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한 젓가락 살을 발라 입안으로 가져가니, 이건 자동차 안에서 떠 먹는 구름맛과는 비교가 불가하다.

 

 

아, 입안에 천사가 내려왔다. 너무너무 맛있다. 이래서 덕자덕자 하나보다.
 

김정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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