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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귀기울일 때 너의 온몸이 보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6.2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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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자리에 접시꽃 피었다. 늙은 어머니는 저만치 가 있는데 접시꽃은 고장 난 시계처럼 서 있다. 봄빛들은 어느새 가버렸다. 살구꽃, 자두꽃 피자마자 그 열매도 금방 떨어지고 마네. 이렇게 가버린 시간 속에 내 나이 쉬어본들 어찌하겠는가. 6월의 빈집은 더욱 선명해진다. 


살아서 열망하는 것들이 늙지 않는 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밥 짓는 냄새가 하늘로 치솟았고 가마솥에 물 끊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때에는 익숙한 것들이 지금은 얼마나 특별한지 모른다. 


수박밭에 퇴비 냄새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텃밭에 퇴비 냄새가 나면 그것이 오히려 익숙하다. 지난 세월이 묻혀서 더욱 견고해진 생각들이 내 마음을 무뎌지게 한다. 빈집에는 아직도 빨간 꽃, 하얀 꽃, 접시꽃이 피었다. 꽃씨가 떨어져 썩지 않고 다시 피어나니 빈집에서도 생명이 주인이 되는 셈이다. 


열망의 씨앗들 산으로, 들로 옮겨 다니며 핀다. 우리 야생화는 꽃과 줄기 모양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꽃잎이 머리를 푸는 모습을 보고 하눌타리라고 하고 여러 꽃이 갈퀴 같다고 하여 갈퀴나물이라고 한다. 잎이 큰 큰잎갈퀴는 갈퀴덩굴과다. 


갈퀴모양이 전혀 없는데 아마 이름이 이름을 짓는 격이다. 고요한 산에서 잎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그 겨드랑이 사이에서 꽃 순이 나온다. 잎과 꽃의 크기가 차이가 크게 난다. 가냘프게 꽃대 끝에서 깨알 같은 흰 꽃이다. 나란한 네 잎 중에서 한 줄만 자라게 하여 고요하게 꽃을 피우게 한다. 산 중에서도 낳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있는 듯이 쉼 없이 피어댄다. 꽃씨는 어느 날 내 마음으로 와서 꽃을 피운다. 산 넘어 그곳에서도 꽃씨가 있다. 꽃씨를 가로막고 있는 땅도 물이 되어 흘러가듯이 자연은 이렇게 돌고 도는 모양인가 보다. 네 잎만으로 아쉽다. 하나가 더 있어야 아름다운 숫자가 된다. 이 숫자가 층층이 올라가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 그래서 숲속에 음악을 켜면 아름다워진다. 자연에 있는 어울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수천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기이함이다. 


너무 많아 익숙함에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 한 그루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을 유심히 본다. 사물도 내 사람이 될 때가 많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음악이 들린다.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꽃을 볼 때 어느덧 꽃씨는 내 마음에 뿌려진다. 큰잎갈퀴꽃들이 숲속에서 가물가물 보일지라도 큰 잎에 작은 꽃이 온몸으로 보인다. 


6월의 꽃들은 무엇이 아쉬워서 강렬하게 피웠을까. 그러나 큰잎갈퀴꽃은 수수하게 핀다. 세월이 흘러감에는 강한 것이 있으면 약한 것도 있다. 좀 살아 보니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많다. 그러나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 아래 꽃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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