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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적 내 영혼의 씨앗은 어느 곳에 피었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6.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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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좁은 논둑길을 걸으면서 나직이 불어오는 바람에 뺨을 대어 보고 싶다. 폭신폭신 토끼풀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도 또한 새롭다. 새까맣게 탄 논두렁에 새싹들은 땅의 기운을 받는다. 


미나리아제비는 물기가 있고 햇볕의 양이 많은 낮은 논두렁 도랑에서 자라는 풀꽃이다. 이 꽃은 5월~6월에 피는데 이때 같은 시기에 피는 꽃은 노란색으로 보리뱅이꽃과 씀바귀꽃이 질 무렵에 핀다. 바람에 쓰려질 듯 다시 흔들리는 노랑 미나리아제비꽃에서는 햇빛은 잘게 부서지고 도랑의 물소리만큼 수많은 꽃이 방울방울 핀다. 


미나리아제비는 독성이 있는 야생화이다. 생약으로 사용하고 있고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줄기와 잎을 약재로 쓰는데 간염으로 인한 황달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한 눈에 백태를 제거에 사용된다. 이 야생화 즙액이 피부에 닿으면 물집이 생길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보리가 노랗게 익어 갈 때 논두렁에 풀색을 보면 하늘 한가운데 와있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고 맑아진다. 미나리아제비꽃 주위에 노란 씀바꽃 보고 그 아래 흰 토끼풀을 보면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3중 합주를 듣는 기분이다. 조그만 물기만 있으면 이들은 서식할 조건이 된다. 


하늘이 주는 대로 감사할 줄 아는 들에 핀 풀꽃들. 낮고 여리고 힘없는 이들은 가장 깨끗한 하늘과 가깝게 산다. 선한 마음의 자리에 들꽃이 되어 어느 하늘가에서 그리움이 되어있는 미나리아제비꽃. 지난날 이 꽃을 보고 모르는 척하다가 들킨 짝사랑이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었다. 독을 품고 있으나 마음을 비우고 살아온 만큼 바람을 쓰다듬는 온유함은 지닌 꽃. 낮은 곳에서 사랑하다가 상처가 있으면 산에 들에 독을 품는 풀꽃. 


그 독만큼 이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삶을 진실로 사랑할수록 가장 나약한 야생화가 되자. 쓰디쓴 씀바귀꽃이 지고 나면 가장 부드러운 미나리아제비꽃이 핀다. 얼굴이 구김 없이 피어있음은 한밤중에도 한창 피어대는 달맞이꽃이 되어도 좋으리. 아직 봄을 보내기가 아쉬워 네가 지나간 길목마다 빨간 장미꽃이 되어도 좋으리. 


생은 유한하나 그립고 아쉬움이 영원하다. 이 꽃이 피고 나면 저 꽃이 피기 시작한다. 태고적 내 영혼의 씨앗들이 어느 곳에서 피었을까. 차근차근 들길은 다가오고 강둑을 따라 하얗게 흘러가는 개망초 꽃은 지난날에도 이보다 더 많이 피어서라 한다. 


낯익은 사랑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그 후에 한참 지나고 나서야 소중한 사랑인 줄 안다. 노랗게 수많은 꽃이 되어도 얼굴은 각각 정갈하게 피었다. 생명과 생명이 이어지는 데에는 오류가 없다. 먼지투성이가 비가 되어 싹이 틔운다. 논도랑에 밑에도 오직 삶을 사랑한다. 그래서 독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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