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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장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6.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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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이며 ‘자유’를 상징한다. 반면 ‘장소’는 정지가 일어나는 곳이며 ‘안전’을 상징한다. 따라서 우리가 공간에 가치를 부여할 때 그것은 장소가 된다. 그리하여 추상적이고 낯선 공간은 개개인의 삶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의미로 가득 찬 애틋하고 구체적인 장소로 전환된다. 장소는 결국 인간화된 공간이다.” - 이 푸 투안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지리 교사로서 임용고사 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개론서들을 뒤적이며 임용시험 합격을 위해 형광펜에 온갖 삼색 볼펜들까지 동원하여 다양한 학자들의 이론과 개념을 뒤적이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던 중이었지만, 이따금씩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들과 이론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글머리에 싣게 된 이론을 펼친 이 푸 투안이라는 지리학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단 한번도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단어들을 다룬 것에서 이목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공간’과 ‘장소’라는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것은 영어로 Space, 즉 물리적인 3차원의 세계를 의미하는데, 바닥이 있고, 어느 정도의 경계로 구획되어진 곳을 의미한다. 한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작은 마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하나의 방 정도의 크기를 규정하기도 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이와 유사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바로 장소인데, 장소는 영어로 Plac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앞서 소개한 공간이라는 단어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떠한 감정이나 주관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감정이 배제된 백지와 같은 상태의 ‘곳’인 것이다. 
반면 이 푸 투안이라는 지리학자는 ‘장소’라는 개념을 인간의 감정과 경험으로 재구성되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면, 척박한 사막이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사막에서 로맨틱한 밤을 보낸 어떠한 사람에게는 사랑과 낭만의 장소로 기억된다.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72-1 부림주택 5동 301호라는 공간은,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고건물이며, 빌라 지하실에는 과거 화재로 인한 그을음이 잔뜩 끼어 있고, 밤이면 쥐들이 천장을 뛰어 다니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발코니가 쥐똥으로 가득한, 타인이 보면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기 힘든,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가진 그런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곳은 어릴 적 소꿉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땀이 뻘뻘 나도록 뛰어다니면서 지금도 잘 쓰고 있는 튼튼한 다리 근육과 뼈를 만들어 준 장소이며, 어머니께서 적은 아버지의 월급으로 외식보다는 손수 만든 맛있는 햄버거와 치킨, 감자 크로켓을 만들어 주신 장소이다. 책꽂이에 빈 공간이 없게, 동네 다른 집에서 버리는 책을 여기저기서 얻어 우리 두 남매를 열심히 길러 내고자 노력하셨던 어머니의 노고가 깃들어 있는 장소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연어와 같이 고향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성을 마음 한 켠에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류의 TV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어떤 사람이든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어릴적 ‘장소’에 대한 애착과 감정 때문이 아닐까. 


고향이라는 곳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좋은 감정이든, 때때로 찾아오는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도 좋다.  현재 완도군이라는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완도중 학생들도, 켜켜이 쌓이는 여러 경험과 감정들을 차곡차곡 모아, 언제든 돌아오고 싶은 장소 완도, 나를 태어나게 해 주고 키워 준 완도라는 ‘장소감’을 가질 수 있게끔, 여러 활동들을 동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분들께서 기억하고 싶고, 또 돌아가고 싶은 나만의 장소는 어디인가.

 

 

최재원
완도중학교 사회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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