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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5.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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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4 

                        추창호

여기서 저기까지 멀고도 가까운 길
그대와 손에 손잡고 유쾌하게 걸어간다
길들이 펼쳐낸 얘기 귀도 기울이면서

그러다 문득, 명치 끝 아려오는 생각 하나
블랙홀 속으로 너와 내가 사라진다면
둘이서 걷던 이 길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무엇인 거
한 소절 노래가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걸
저 길섶 풀꽃은 알고 또 꽃을 피우는 게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정해진 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모두가 다르다. 화자는 ‘여기서 저기까지 멀고도 가까운 길’이라고 한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100년을 산다고 해도 어찌 보면 멀고, 어찌 보면 가까운 길이다. 그 길을 그대와 손잡고 유쾌하게 걸어갈 수 있다면, 또 길들이 펼쳐낸 얘기에 귀도 기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유쾌하게 살다 간다면… 


  그러다 문득 명치끝 아려오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걷다가 어느 날 문득 ‘블랙홀 속으로 너와 내가 사라진다면’ 하고 상상하면 인생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누가 우리가 걸은 길을 기억이라도 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한없이 허무하다. 


  그러나 화자는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무엇인 거’라며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작은 한 소절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걸 알기에, 또 길섶의 풀꽃도 그 이치를 알기에 저마다 절망하지 않고, 허망해 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거라고 한다.

인생은 허망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허망하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길섶에서도 꽃을 피우는 작은 들꽃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예외 없는 삶의 모습이며, 소박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정반합의 반증법적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오월의 숲은 나날이 짙어지고 푸름이 세상을 덮어간다. 그렇게 눈에 마음에 가득히 푸르름을 담으며 가는 오월, 한국의 미래도 밝고 푸르게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모든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고통과 괴로움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실망도 절망도 견뎌내며 가야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해는 변함없이 내일도 떠오르고, 우리도 변함없이 또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김민정 문학박사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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