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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겁대가리를 상실했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5.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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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바다가 마음을 열어라열어라 주문한다.언니와 함께 밤기차로 봄여행을 떠났다. 깊은 한밤을 자고 아침부터 불꽃 뿜어내는 푸닥거리로 봄여행을 깡그리 망칠뻔 했다.


어둠이 가시기 전 꿩이 꽝꽝 바다 멀리까지 들리도록 울었다. 
언니가 잔다.
많이 지쳤나 보다.
좀처럼 힘들다는 소리를 않던 언니였다. 


그간의 짓눌린 고단함을 한 보따리 풀어헤치더니만 뒤척뒤척 밤늦도록  다시 마음에 쑤셔넣고 잠들었다.
우리가 살아야하는 남은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이 꽃잎처럼 내리는 겨울날도 행복하다. 벚꽃잎이 하얗게 눈처럼 내리는 공허함 마저 행복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행복한 데 슬프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 무너져 천국을 보곤한다.
일찍 눈을 뜬 나는 언니가 눈 뜨기를 한참이나 조용히 미동도 없이 기다렸다.


지나친 고요함이란 폭풍전야의 위태로움이라던가. 
언니가 예민했다. 아니, 내가 더 예민했다.
그 아침 통째로 아작 날 뻔 했다. 언니에게 머리카락 홀라당 뽑힐 뻔했다. 그때 그 순간 겁대가리를 상실했다.


어릴적에도 성질이 드러워 눈 뒤집어 까고 경기 했다는 내 바로 위 개띠 언니다.진짜 성질날 땐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것만 같다. 그런 언니를 자극할 땐 스스로 무덤파는 미친 짓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답게 담담히 전진했다.
너라는 말을 내입에서 나와 언니 귀에 들어갈 즘 한줌도 안 되는 내 머리카락은 휘리릭 잡혀 홀라당 뽑아 뿌릴만한 강력한 파워의 지랄배기, 성깔머리 언니다. 


친구처럼 지내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 언니가 나를 찾았다. 수직의 관계를 놓고 수평의 관계로 온 것이다.
그래도 언니는 언니다.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했던가.


언니가 내 말과 내 행동에 뒤집혔다. 예전과 달리 불같은 언니가 그래도 참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더니  언니가 내 앞에서 오열하며 울었다. 차고도 넘치는 숨이 과호흡으로 올라왔다. 너 나한테 왜... 이러냐고 서글퍼 목이 메인다. 마음 강해지라고 더 강해지라고 내가 흔들었다. 힘든 거 알지만 더 강해지라고. 속마음을 알아챈 듯 그 불같은 성미를 죽이며 울었다.


나도 울었다. 약할수록 강해져야하고 강할수록  더 부드러워져야 해. 부드러워질수록 더욱 강해지고 강해지고 나서야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거야.
그래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거야.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대도 나무는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한다고.


강해지고 싶었다. 나를 낳은 엄마는 한 명이지만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한 손길은 많았다. 생각보다 여리게 컸다. 그날 아침도 언니의 얼굴에 엄마의 모습이 비췄다.
언니는 내목소리에 잔뜩 어린냥이 있어 언니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별일 아니었다.내 짐속에 내옷과 내 신발이 사단이였다. 같은 색 같은 디자인 옷 두 벌과 내신발 그러니까 불편한 진실같은 구두다.


그토록 내마음을 알아주던 언니가 나에게 욕했다. 싫단다. 그순간 진짜 미쳤었나보다. 언니에게 아득바득 핏대 높혀 대들자 언니가 숨을 헐떡였다. 그 옛날과 엇비슷한 고집이 발동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작은 방1칸에 둘이 살았었다. 그날 내가 심기가 사나웠다. 한바탕 뒤집힌 봄날의 스파크였다. 사건은 이랬다.

 

 

언니가 자라 불을 껐다. 잠 안와서 불을 내가 켰다. 언니가 다시 자라 불을 껐다. 또 다시불을 켰다.그 순간 별이 번쩍번쩍 불꽃 튀게 살기가 일더니 나를 뭉갰다. 나도 참지 않았다. 
악을 쓰면서 죽기살기로 덤볐다.


이렇게는 못살아 이렇게 안 살아~ 그 세월이 30년 가까이  흘렀건만 어쩜 내가 언니보다 더 악바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 자유이고 싶은 자유였다. 이것만은 이번만은 절대 못 참아! 안 참아! 불을 켜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자신을 거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그때 절대적으로 외로웠나 보다.
순식간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화기가 서로를 향해 뿜고 있었다. 죽을 길에 살길이 있다하던가. 나는 어쩔 수 없는 동생이고 언니가 멈췄다. 너 나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


얼마나 이 여행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언니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가끔은 별일 아닌 일에 죽는 줄 모르고 덤벼 감정의 쓰나미로 훅 가곤한다.
속은 참 후련했다.


지나쳐 온 시간이 못내 뜨거운 날이었다. 여행지에서 한바탕 터지고 말았다. 힘을 얻을 곳에서 힘을 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단단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쁜 것들은 까칠하다. 구두가 그렇다 .좋아하는 옷은 쉬이 낡는다. 옷이 그렇다.


어른이란 하고 싶은 말을 아끼고 해야하는 말을 해야한다. 불편한 진실같은 구두도 잠깐이다.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때를 만난듯 꽃 기운이 만발이다.
얼굴에 골깊은 주름살 잡히고 세월이 나를 훑고 있음을 알았다. 
꽃다운 나이부터 야금야금 키워온 몸집은 바닥을 기는 우울증의 갑옷이 되었다.
앞으로 선이 고운 뒤태로 살기로.

 

이의숙 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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