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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곳을 낯선 시선으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5.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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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눈부신 빛살들이 관절마다 꽂힌다. 금방 날기라도 할 것 같은 나비 문양 경첩의 날갯짓처럼 몸의 움직임이 매끈하다. 오월은 소리 나는 발음처럼 풋풋하면서도 부드러워진다. 이런 햇빛과 이런 바람, 이런 하늘일 땐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날이다. 떠나지 않기에도 괜찮은 날이다. 나로부터, 우리로부터 조금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에 좋은 날이다. 목덜미로 파고드는 싱그러움이 그런 사소한 생각을 풀어놓게 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은 만나고, 떠나지 못했던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 더 특별해진 만남, 더 간절해진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나도 여행 중이다. 잿빛 건물이 만든 협곡을 걷다가 오래된 기억들이 머무는 동네를 걷는다. 좁은 골목을 서성이다 보면 낮은 지붕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나를 이 동네에 녹아들게 한다. 담장은 낯선 이에게 기꺼이 마당을 내준다.

빨랫줄에는 노랑 빨래집게가 물고 있는 꽃무늬 일바지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꽃잎처럼 펄럭인다. 사람의 일상 한 부분이 과거의 기억을 깨우는 곳, 잊고 지낸 것들이 간절할 때 여기 이 골목에 새로운 기억을 포개며 걷게 되는 동네. 겹겹이 쌓인 추억이 있어 눈이 내려도 참 따듯한 곳.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많아서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나이 먹은 동네를 여행 중이다. 꺾어지는 골목 어귀마다 남아있는 추억이 수십 년을 가라앉아 있던 침전물 같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소박한 여행에 촉수 낮은 등이 마음 한쪽에 켜진다. 


그동안의 여행을 곱씹어보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했다. 마치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증사진만 있고, 시간을 들여 내가 왜 그곳에 갔는지가 없었던 여행들. 지금 왜 여기에 있나. 나는 지금 왜 여기로 왔나.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서 몸을 혹사하며 가득 채워나갔던 시간만이 유일하게 여행의 사실로 남았을. 그 사실도 나름의 여행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생각을 놓을 수 있는, 낯익은 곳을 낯선 시선으로 다시 가까워져 보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귀찮은 게 많아진다. 그중에 한 가지가 짐을 싸서 떠나는 여행이 번거롭다. 그래서 요즘 나는 반나절이면 충분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의 골목을 서성거리는 콘셉트가 여행의 기준이 됐다.

 

지금 내가 엉거주춤 서성거리는 이곳은 스무 살이 지났을 무렵 자취생활을 했던 곳이다. 잘 꾸며진 천변 산책로를 걸을 때면 수원이라는 지명과 참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중심도시에 속하지만, '도시'란 단어보다는 '동네'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변두리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이제 막 신도시 형태를 닮아가는데, 이곳은 개발에서 비껴갔다. 공군비행장이라는 거대한 이유더라도 변하는 것투성이에서 한 곳쯤은 조금 더디게 흐르는 마을 앞 물길을 닮아서 좋다.


도시와 이 동네의 경계 같은 작은 굴다리를 빠져나와 골목길로 들어서면 내가 살았었던 어떤 날로 떠밀려간다. 오월 같은 풋풋함이 미래에도 영원할 것처럼 순수했던 청춘이 그곳에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를 떠받치고 있는 삶을 과거의 내 삶에 붙인다. 희미한 채로 때때로 가슴을 콕콕 울리며 그렇게 거슬러 흘러가다 보면 나타나는 그 모든 길 끝에서 끝까지 몇 겹으로 겹쳐 나타나는 어제의 이야기들, 풀꽃처럼 이름을 알 듯 말 듯 한 아득한 얼굴들. 끝내 이름을 알아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때의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늘 존재한다.

 

고향처럼 보듬어준다. 사소해서 중요하지 않다 여겼던 것들이 의외로 기억 속에 오래 머문다. 처음 찾는 것도 아닌 이곳이, 달라진 것도 많지 않은 여기가 특별하거나 말거나 왜 여기에 있는지만큼은 선명해지는 공간이다.


푸성귀 같은 오월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그리워지는 것도 많아지는 계절. 해맑게 불어오는 바람만큼만 우리 사이가 가까워졌으면 한다. 사소한 기억으로 오래 남아 소박한 곳에서 그리워할 수 있는 얼굴, 멀어져도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언제든 가까워질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우리였으면, 오월을 품고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듯 나에게 불어오는 것들을 기다릴 수 있게 말이다.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난 봄 안에서 다시 만난 사이라서 설렐 테니까. 
바람의 비행이 아주 낮게 여린 풀 사이로 찾아드는 오월이다.

 

김지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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