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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쓰는 사람 구전을 증거 삼아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3.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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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징의 항몽의거 장도 주민들이 몽골의 압박에 의한 노역에서 해방된 것이다. 따라서 1274년 10월 20일 태풍도 없을 때인 일본 1차정벌 때에 대형선박이 부족하고 또한 좋은 목재로 배를 만들지 못해 조그마한 풍랑에도 바위에 부딪쳐 파손되었고 일본으로 출정한 군사의 절반만 살아서 돌아왔다. 이를 두고 일본은 가미가제(神風)라고 기고만장하는 단초가 된 것이다.


임억령은 미적추(米賊酋)라고 송징을 말한다. 쌀 도적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완도 부근을 지나는 선박을 불러 세워 조운선이나 세곡선을 검열하여 강화도 고려정부에 가는 물자를 차단하고 진도 고려국으로 운반했다고 볼 수 있다. 여몽(王師)군에게 토벌당하지 않도록 개를 풀어서 경계했고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했다고 한다. 


임억령은 슬퍼하고 있다. 하늘이 여자 아이의 손을 빌려 활에서 피가 났다고 한다. 송징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송징이 장보고라고 하는 억측도 낳고, 김통정이라고 하는 억측도 낳은 것 같다. 장보고도 딸의 납비로 죽음을 당했고, 김통정도 아이업개 때문에 제주도에서 진압을 당했다고 하는 설로 유추된 단서가 되었다. 그러나 쌀도둑놈, 미적추의 송징이다.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고려시대 선소가 많은 장도의 주민들의 당제로 살아남아있는 전설의 인물이다. 


또한 송징이 죽고 세시와 복(伏)일, 납일에 제사를 지내고 막걸리 한 잔 올리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많은 유생(諸生)들이 음사라고 비난하는 세태를 나무라고 있다. 조선시대 임억령 당시에는 사림들이 그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해서 유생들이 새로운 기득권 지배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리학이 아닌 여타의 다른 것은 음사(淫祠)로 몰거나 이단(異端)으로 내몰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고려왕조의 정통을 이어받은 조선이었으니 고려왕조의 정통에 반대한 삼별초의 항몽에 나선 사람들은 조선유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음사고 이단이었을 것이다. 1451년 고려사가 만들어진 조선 세종 때의 시각이 진도의 고려국은 적도(賊盜)였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송징의 용맹은 하늘이 주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이를 구제하라고 보냈다고 한다. 이 때 송징은 그를 다스리는 주인이 없어 송징은 어디에도 소속된 바가 없다고 한다. 공식적인 기록이 없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곧 다시 말해 송징 그는 의병(義兵)이었던 것이다. 


완도를 중심으로 한 항몽의병(抗蒙義兵)! 
바로 송징의 실체다. 송징 같은 인물이 없어 1510년 중종 때 삼포왜변을 당했다고 임억령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송징은 살아서는 해적(海中寇)이었다가 죽어서는 바다의 안개(海中霧) 속에 버려져서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고 임억령은 노인(古老)에게 물어 알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는 사람의 입으로 전해져야 오류가 없다고 하면서 송대장군가를 마치고 있다.


그래서 오늘까지 완도 장도당굿으로 전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송징이 지금까지 살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壯公我髮豎(장공아발수) 
장하도다 공이시여 내 머리털 일어서고
貴公吾腰俯(귀공오요부) 
귀하도다 공이시여 허리 절로 굽혀지네
在古時未遇(재고시미우) 
옛날의 당시에 때를 만나지 못하였으니
於今骨已朽(어금골이후) 
지금쯤은 뼈까지도 이미 다 삭았겠구려
生爲海中寇(생위해중구) 
살아 생전에는 해적들의 두령이 되었고
棄海中霧(사기해중무) 
죽은 뒤에는 바다의 안개속에 버려져서
靑山本無墓(청산본무묘) 
청산에 본래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으니
遺民誰爾後(유민수이후) 
남겨진 백성중에 그대 후예는 누구던가
問之於古老(문지어고노) 
나이 많은 노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서
首尾得細剖(수미득세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알게 되었도다
太史徵人口(태사징인구) 
역사를 쓰는 사람은 구전을 증거삼아야
列傳猶不誤(열전유불오) 
열전에 오히려 착오가 생기지 않는다오
莫道吾詩漏(막도오시루) 
나의 시가 엉성하다고 말하지들 마시라
庶幾國史補(서기국사보) 
국사를 어지간히 보완할 수가 있으니까
임억령의 송대장군가 중에서 (끝)


완도신문 해양역사문화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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