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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밀려오는 구경짝지 파도 소리

정지승의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1.23 10:54
  • 수정 2022.01.2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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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락 자그락’ 몽돌에 파고드는 파도 소리에 더 정감이 가는 해변,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영롱함이 피어난 돌무더기에 마음 뺏겨 본 일이 있는가. 완도항에서 서쪽으로 4km쯤 떨어진 완도읍 정도리. 해변의 길이가 대략 800여 미터, 40여 종의 상록수림이 어우러져 있는 넓은 숲에는 해변 산책로가 있어서 차분히 걷기에 좋다.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을 때 구계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궁중에서 녹원지로 봉했다고 전한다. 


이곳 지명은 여러 가지로 불렀다. ‘돌 사이에서 샘이 솟아난다’고 하여 정돌리(井乭里)라고 부르다가 1916년 마을 통폐합 때 블교적 색채가 강한 정도(正道)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구계등(九階燈)을 함께 사용했다고 한다. 태초부터 인류에게 이름 짓는 권한이 주어져서일까? 사람들은 모든 사물과 형상에 어울리는 이름 짓는 일에 익숙하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에 걸맞게 그 임무를 완수하려는 듯 사람들은 이름 짓는 일에 매우 열성적이다. 그 일은 마치 어떤 대상에 주인의식을 표명하려는 한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구경짝지, 아홉 경치 정도리의 매력

정도리의 진짜 이름은 구경짝지九景灂(?)地라고 완도 사람들은 말한다. 지역 향토사를 연구하는 분들도 한결같이 ‘짝지’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려면 아무래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표현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기본 예의, 그러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다. 추측대로라면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도 관계없겠지만 적어도 그 지역을 제대로 알아가려면 지역의 가까운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게다.
우선 짝지란 지명을 살펴보면 짝지골, 작은 짝지, 신안의 짝지 해변, 제주도 서귀포 안덕해변의 뒷짝지 등과 같이 주로 해안지대에 붙여지는 것으로 ‘구경짝지’라는 이곳의 고유 명칭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역민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아홉 개의 경치는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지역의 풍광을 선조들이 8경에 담아 노래했다면, 거기에 1경을 더해 8경을 뛰어넘는 풍경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여기에 듬뿍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동양에서 9라는 숫자가 최대치를 표현한다면 최고의 볼거리가 정도리에 있음을 의미하여 이곳을 ‘구경짝지’라고 이름하였으니 가히 명승지에 포함된 것은 당연지사. 구경짝지의 갯돌은 몇 만 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인 탓에 표면이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모양도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서 바다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1972년 7월 명승 제3호로 지정됐다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자랑스런 명소

지난 201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한국의 명승지를 주제로 특별 사진전이 열렸다. 그때 완도의 대표 관광지인 정도리 구계등의 아름다운 절경 사진이 중국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에 전시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주중한국문화원과 공동으로 그해 8월 보름 동안 ‘한국의 명승 특별 사진전’을 개최한 것. 한국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한자 문화권 속에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잠시 교류가 단절됐으나 지난 1992년 한중수교를 통해 우호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양국이 누려왔던 명승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의 명승지를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기획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08년부터 10년간 자연과 역사, 문화, 경관이 뛰어난 가치를 지녀 지정된 명승들을 선정해 디지털 영상으로 담아내는 작업도 병행했다. 전국의 대표 명승 40여 개 지역을 선별해 정원과 원림형, 도서 해안형, 산악형 등의 주제별로 나누어 소개했는데, 그중 한 곳인 국가 명승 3호 완도의 정도리를 선택한 것. 선정기준에는 지역의 역사성과 자원 보존성이 우선했다.

 

추억이 서려 있는 보전해야 할 지역의 자원

지역의 자원을 바라보는 것에 지역 사람 눈이 더 어두울 때가 있다. 날마다 보는 것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외지 사람이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높이 평가하며 알아줄 때가 많다. 비단 완도만의 일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이런 불문율은 깨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지역사회는 좋은 자원을 허투루 여기고 보존을 게을리할 때가 많았다. 결국 그 자원을 잃어버리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생겼던 게 대부분이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지역의 문화 자원 살리기에 지역민들이 함께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정신문화이고 그 뿌리는 지역의 문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후대에 전해줘야 할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가 아끼야할 지역의 자원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존해 나갈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과감히 투자해야 옳은 일이 아닐까. 그것만이 지역을 살리는 중요한 과업이며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청산일출(靑山日出)  청산도 바다 위에 해가 뜨는 모습
덕우월출(德牛月出)  덕우도 섬 사이로 달이 뜨는 모습
점점다도(點點多島)  점점이 흩어져 있는 다도해의 모습
수평한라(水平漢拏)  수평선 위에 나타나는 한라산 모습
기빈비말(磯濱飛沫)  파도가 바람에 날려 부딪히는 모습
태양반사(太陽反射)  갯돌이 물에 젖어 햇볕이 투영되는 모습
월야만항(月夜慢航)  달빛 사이로 돛단배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
어부노성(漁夫櫓聲)   어부의 노 젓는 소리
풍림단풍(風林丹楓)  단풍 든 방풍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우리 지역에 전해 내려온 구경짝지의 아홉 가지 절경이다. 한겨울 찬바람에 밀려드는 우렁찬 파도 소리와 햇빛에 투영되는 몽돌 위에 아로새겨진 영롱한 빛망울이 구경짝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아홉 개의 계단을 형성했다’는 표현보다도 더 깊은 아름다움이 숨쉬는, 지역 사람들에게는 소풍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외지에 살다가 고향에 올 때마다 쉽게 들릴 수 있는 곳인데, 그래서 구경짝지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정지승 다큐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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