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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봉에 올라서니 일망(一望)이 무제(無際)로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2.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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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마치고 보니 개인적으로 소장해봐야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군민들과 외부 손님들이 봤을 때 보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증했어요” 
목하 정지원 선생이 이번 미술협회 전시를 마치고 22폭 병풍을 완도군의회에 기증했다.  완도문화예술의 전당 1층 전시실에서 열린 전시회는 34명의 지역 작가가 참여했다. 


목하 선생은 완도예찬이라는 이경구 선생의 시로 작품을 남겼는데, 완도 지역의 섬마다 특이한 점과 자랑거리를 기록한 것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고.
작품은 세로 1.72m, 가로 10m의 웅장함과 기품이 서려 있는 스물두 폭 서예 작품으로 한글 서체이며 완도의 자연과 주민들의 삶을 정감 있는 문장으로 엮어 힘차게 표현했다.


목하 선생은 지역에서 활동하며 후진 양성과 서예 분야에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신지면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은 물론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에 “동국진체의 완성, 원교 이광사 서예 특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목하 선생은 원교에 의해 완성됐다는 동국진체는 “원교 스스로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 그 서체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후학들에 의해 명명되어진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동국진체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원교 이광사에 대해 세상에 더 알리고 원교체의 대를 잇는 ‘청해진체’의 완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피력한다.


그가 말하는 ‘청해진체’는 목하 선생의 서체로서 원교와 마찬가지로 근엄한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갈매기의 날개짓을 연상시키는 활달하고 강인한 저수량서체, 어머니 품같은 우세남의 서체, 포용과 여유로운 안진경의 해서를 두루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고.


“다른 사람들은 기본 틀에 맞추어 쓰면 잘 쓴다는 말을 하는데, 원교는 틀에서 벗어나 아주 천진난만한 서체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버렸다”고. 전했다.
목하 정지원 선생이 붓을 든 것은 초등학교 4-5학년 쯤이다. 그 때 붓글씨에 매력을 느끼고 군 제대 후 국전에 참여하지않은 비국전파였던 형의 친구 분에게 글씨의 묘미를 배워 차츰 서예에 빠져들게 됐고, 학남 정환섭 선생의 제자였던 운산 정팔균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아 그때 비로소 필체가 정립되는 시기였다고. 


목하선생은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광주시 미술대전, 무등 미술대전 등 15개 단체 초대작가와 40여 차례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서예 대가로 꼽힌다.
완도군의회 허궁희 의장은 “완도를 예술로 표현한 대작을 기증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작품을 소중하게 보존하여 의회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완도를 알리는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전했다.


김미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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