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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가십니까? 그렇게 가십니까?

추모의 글-이대욱 兄의 영전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1.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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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 떠나간다 나는 가노라! 


세월의 꽃동무를 남겨 두고서 그렇게 가십니까? 


세월의 꽃동무들 세상에 만발하고 꽃향기 그윽한데 그렇게 가십니까? 꽃송이 같은 식구들 가슴에 담고 아쉬워 어찌 가십니까?


2009년. 제19회 소안항일운동기념 추모제와 제1회 소안항일운동기념 전국 학생문예백일장을 열고 싶은데 도움을 주라는 형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저는 소안도라는 섬에 발을 디뎠습니다. 소안의 아름다움과 소안항일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그제서야 처음 깨달았습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50분 남짓 ‘대한’, ‘민국’, ‘만세’호를 타고 가면 나타나는 항일의 섬 소안도와 함께 형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안의 항일운동을 전국화하고 싶다. 


소안의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 당시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었던 형의 생각이었습니다. 


일머리의 처음과 끝을 알고 계획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관철시키고 그 평가에서는 관대했습니다. 다정다감하면서도 넉넉한 품성으로 생판 처음으로 ‘듣도 보도 못한’ 큰 행사를 준비해나갔습니다. 늘 기록하고 공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국학생문예백일장은 올해까지 12회를 이어져 오게 됐고, 기념 추모제는 30회, 당사도 등대의병의거 기념식도 10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업들이 펼쳐지면서 형은 2014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13대, 14대, 15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소안항일운동을 기념하는 사업들은 이대욱 회장님에 의해 돛대가 세워졌습니다.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운영, 소안항일운동기념공원 조성, 성지복원공원화 사업, 완도 3.1운동 기념사업, 365일 나라 사랑 태극기의 섬 선포식, 항일독립운동가 발표, 노래를 품은 섬 소안도 그림책 발간 등의 경이로운 역사도 소안면민들과 함께 이루었습니다. 


우리 항일역사의 정점을 이 소안도민들은 자랑스러워했고, 그 정신적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자는 그 숭고한 정신과 헌신은 소안면민들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뜨겁게 그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시인으로 등단해 소안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정리해 글을 남기셨지요. <소안면지>와 <소안항일운동사> 책자는 그런 역사 기록의 성과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형이 시 원고를 만들고 제가 책자를 만들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는데 그 약속은 이제 파기된 약속이 되어버렸군요. 형은 문예와 문화와 문학이 결국 우리 역사를 풍요롭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고향 소안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어떻게 소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릴까 평생을 고민하고 헌신하셨던 분. 


형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발목 수술을 하고 요양하고 있던 형을 위해 구병시식을 부탁한 스님과 함께 광주의 한 병원에 갔지요. 발목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해 닥터헬기를 타고 가서 수술하고 요양을 하러 광주 병원에 오셨지요. 참담한 상황에서도 형은 오히려 더 덤덤했습니다. 


고래 심줄보다 더 질긴 강인한 정신력을 잃지 않던 형이 이번에는 이렇게 쉽게 생의 인연을 놓아버리셨는지요. 그렇게 수없이 많은 만남이 이루어지다가 제가 제안했지요. “우리, 의형제 맺읍시다.” 그것은 곧 형에 대한 외경심을 인정했던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지부진하고 누추한 삶을 살아온 저를 동생처럼 여겨 살펴달라는 부탁의 마음이었습니다.


제 핸드폰 배경 화면에는 형과 함께 찾아가 찍었던 물치기미 전망대에서 바라본 당사도, 추자도 바닷가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매일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소안도의 마음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마음도 가뭇없어졌어요.


이 세상에 가장 비싼 것은 눈물값이라는 어느 석학의 글을 읽는 순간 형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이제 형이라는 말로도 부를 수 없게 된 그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쪼록 흘렀습니다. 그 눈물로 형을 배웅합니다. 


소안도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립정신을 심어주었던 이사완 선생의 ‘이별가’를 빌어 형을 배웅합니다. 형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형에게 해주고 싶은 말, 형이 소안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겁니다. 


영면하소서!

 

소안의 뭉게뭉게 피는 꽃송이
한 말씀 드리노니 새겨두시오
아무리 악풍 폭우 심할지라도
임 향한 일편단심 변치 마시오
임 향한 일편단심 변치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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