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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석류빛 보다 더 진한 가을소리가 되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21 18:01
  • 수정 2021.10.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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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동안 안으로만 쥐고 있었다. 움켜잡은 주먹 안에서는 생명이 잉태하였고 결연한 의지로 그 생명을 키워 냈다. 
잎사귀는 온갖 태양 빛을 받아 엽록체를 만들고 광합성 작용을 하여 영양분을 만든다. 콩 뿌리혹박테리아는 흙이나 공기 중에 질소를 모아 콩에 주면 이걸로 단백질을 만든다. 


무기 화학에서 유기 화학으로 가는 여정이 절묘하게 손을 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 생명이 잉태되고 영양분으로 성장한다. 시월 한가운데선 꽉 쥐고 있는 생명을 펴야 한다. 콩깍지가 열리는 순간 가을의 소리가 시작된다. 


으름덩굴 열매가 열리는 순간 파란 가을 하늘로 채워진다. 박주가리가 열리는 순간 솜털 같은 씨앗은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멀리 가서 자손을 번창하라 한다. 콩깍지를 마당에 모아놓으면 제법 콩 터지는 소리가 난다. 녹두 콩깍지가 제일 작고 그다음 크기는 팥이다. 


노란 콩, 검은 서리태 순이다. 크기에 따라 음역대가 다르다. 가을의 소리는 여러 음계를 달고 있고 모이면 하나의 노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다. 콩깍지의 탄성력은 두 개의 콩깍지로 갈라질 때 꽈배기처럼 꼬아짐에 있다. 


비틀어 터지는 순간만큼은 콩알이 멀리 떨어질 수 있게 탄성력을 발휘한다. 가을의 소리는 아픔이 될 수도 있고 기쁨의 함성이 생명탄생의 시작임을 알릴 수 있다. 전통적으로 콩밥, 콩죽, 비지, 콩 수프 등등 콩이 주된 재료로 들어가는 음식이다. 단백질 함유량이 많아 가난한 자의 고기라고 말 할 수 있다. 식물 자체에서 질소를 만들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끔 에너지를 만든다.

예부터 단백질이 부족한 상태에서 쉽게 길러 얻는 방법은 콩이다. 콩은 질소를 만들어 쓰고 남음은 다른 식물들에 준다. 콩밭에 옥수수를 심는 이유도 질소 거름이 없는 시대였다. 유일하게 질소를 만드는 콩밭은 다른 식물과 섞어 키우면 잘 자란다. 


이런 과학적인 방법을 옛사람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넉넉한 가을은 나눔의 계절. 안으로 쥐고 있는 것을 밖으로 떨쳐냄이다. 가을 햇볕이 쏟아진 곳에선 순간 가을의 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직접 대면할 순 없어도 마음의 떨림으로 고요히 들린다. 세월이 갈수록 그 떨림은 둔해지고 있다. 


석류꽃보다도 더 붉게 물든 석류알처럼 알알이 박혀서 가을 햇볕과 대면하는 순간만큼은 가을의 소리가 되고 싶은데, 그래서 소리 없는 눈물이 되고 싶은데, 사실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눈빛으로 열리는 순간을 귀 기울인다. 지나간 흔적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한가한 마음에 불을 켠다. 콩깍지에 씌어도 열리는 순간의 소리는 진실이 담겨 있다. 매일 예행연습 없이 실전에 임해야 하는 운명이야말로 진실한 삶이 아닌가 싶다. 


                                                                                                                                    신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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