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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시려고 뼈마디가 사무치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15 14:33
  • 수정 2021.10.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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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가 바람에 하얗게 흔들리네요. 사는동안 수천번 남모르게 스스로 자신을 꺾어 버리고 싶었을 기구한 엄마의 팔자.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이름 부르면 콧끝시려요. 


엄마는 첫 번째 남편 사이 두 딸을 낳았고 작은 딸 뱃속에 있는데 남편이 죽었어요.어린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요.두 번째 결혼해서 아들 둘에 딸을 낳았고 이번에도 남편이 죽었어요.엄마는 살면서 지난 슬픔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사람들과도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지요.눈만 뜨면 새벽부터 일어나 오밤중 되도록 산날맹이 자갈밭에서 호미로 거칠게 일 하셨어요.견딜 수 없는 슬픔을 그렇게해서 지우고 싶었을 거예요.호미자루 닳도록.  


아버지는 아들 하나에 딸 여섯을 두셨지만 아들 셋을 홍역으로 잃었고 끝내는 조강지처까지 죽었어요.젊은 혈기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깡패였다지요.솥단지 마당에 집어던지고 항아리 작대기로 깨부수고 엄마와의 싸움을 말리는 고모에게 욕해서 고모와 싸우기까지 했다네요.그럴만도 하겠다 끄덕여져요.나를 낳은 엄마는 약한 몸으로 하나 낳고 또 낳고 아기 낳을 적마다 입덧으로 눕고 배꺼지기 무섭게 낳고 또 낳고 아들 낳다 생을 마감하셨으니 전쟁터 같은 삶 이해는 되요.  


그야말로 흥부네 집였겠어요.언니의 마음은 아버지를 택할래? 엄마를 택할래? 혼자 묻고 아버지 쪽으로 가야 굶어 죽지 않는 답을 혼자 했대요.아버지 당신이 죄인이다 하신 그 의미 알겠어요.엄마가 돌아가신 날 큰언니는 아버지가 엄마를 때려 맞아 죽었다고 억지부리며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그 좋아하시던 담배,술,모조리 끊고 세상 달관하시듯 사셨던 건 아마도 그간 아버지도 철이 무겁게 들었지 싶습니다. 두 번째로 간 장가는 짧게  마무리하고 세 번째 인연으로 엄마를 잘 만났어요.천하에 둘도 없는 굴곡진 팔자려 서로 보듬고 아끼며 잘살자는 각오가 있었겠지요. 내가 지켜본 두 분 모습은 도란도란 흐르는 시냇물처럼 그럴사하게 보기 좋았어요. 


어느 찬서리 내리는 늦가을 엄마가 아버지를 남겨두고 불현듯 떠났어요.30년 보따리 싸들고 떠났어요.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로간의 상처를 밀봉하듯 모두가 입다물었어요 모진 삶의 풍파를 꿋꿋이 살아내시곤 어찌 그리 매정하게 가셨을까요. 영화속 한 장면처럼 홀연히 사라지셨어요. 
시시때때로 갈바람이 물컹 불면 옛기억으로 가을앓이 해요. 어릴적 상수리 한 주먹 주워오면 해맑은 웃음을 보이시던 엄마.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은 잘익은 상수리 후두둑 떨어질까 밤이 깊도록 뒤척뒤척 상수리 좋아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 하얗게 핀 구절초와 함께 아른 거려요.  


잘 익은 상수리 반기는 엄마웃음 좋아했는데,엄마가 행복하면 나까지 행복했었는데,그 땐 몰랐어요.좋다는 말,행복하다는 말,내  엄마로 와서 고맙다는 말 입밖으로 표현 못하고.'빛바랜 시간 속에서 엄마를 그리워 해요. 
사랑인가.고마운 그 마음,그리움인가. 애틋한 그 숨결,엄마엄마...엄마 덧없는 그 이름. 잠을 험하게 자는 나는 티비 다리 밑에서 곧 잘 일어 났어요.엄마는 내게 눈치없이 사방을 돌며 잔다며 나무라셨어요.아버지를 많이도 사랑했던 거 같습니다.아버지 밥상은 늘 맛있는 반찬이 표나게 올라왔으니까요. 


없는 집에 오셔서 두 분 청춘스럽게 다투기도 하셨지만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구판장서 아버지가 아줌마랑 막걸리 마셨다.엄마에게 혼 나는 중이었습니다.내 나이 여섯 살에 오셔 밥해 먹이고 옷빨아 입혀 키우는 것을 가끔씩 생색 내시며 당신을 각인 시켜주셨어요.엄마도 종종 어린 나에게 기대고 싶었나 봅니다.내가 크거든 당신 수고로움 알아달라는 그런 비슷한 말로 기억해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도록 내 곁에
계셨던 나의 엄마.
죽으면 썩을 몸 아낀다.
나에게 직설적으로 하셨지요.
죽으면 썩을 몸.
밤이 깊어지는 시간,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썩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전투적으로 사셨던 그 이름 엄마. 
 


당신이 오시려고 바람이 서럽게 울더이다.

당신이 오시려고 뼈마디 사무치게 일더이다.

 

이의숙/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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