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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름 없는 별들, 은하수를 이루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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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민주평화길 답사, 신지 고금 약산, 다리로 이어진 섬 아닌 섬들을 차례로 돌았다. 신지 항일운동기념탑에서는 광복회 광주지부 대의원 유경식님이 기미독립선언서를 공약3장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까지 암송해 주셨다. 우리는 아니, 나는 부끄러웠다. 고금 항일기념탑 비석에 새겨진 노래를 읽었다. 제목처럼 ‘눈물어린 노래’다. 약산 항일기념탑도 참배하였다. 완도는 발길 닿는 곳마다 항일 성지다. 충혼탑에 새겨진 이름들, 스무 살의 젊고 아픈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송기호 송내호 이현렬 정남균 문승수 장재성 왕재일 이기홍 장석천 …. 성진회 신간회 전남운동협의회…. 남해 점점이 뿌려진 섬마다 항일의 핏자국 위에 질경이 억새 구절초 달개비 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고금도에서는 이순신도 만났다. 가리포진 사당 충무사, 한적한 곳에서 그는 고단했던 한 생애를 내려놓고 편안히 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튿날 화흥포항에서 소안도로 가는 아침 첫배에 올랐다. 든든한 대한호는 버스 두 대를 싣고 섬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바다 위에 가만히 떠 있는 듯했는데 어느 사이 소안도에 닿았다. 


태극기와 무궁화의 섬 소안도의 항일독립운동사는 차라리 믿을 수 없는 전설에 가깝다. 목숨과 바꾼 고귀한 뜻을 어찌 작은 공간과 비석에 다 새길 수 있을까마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주제로 아담하고 의미 깊게 꾸며 놓았다. 부조로 새긴 열사들의 형형한 눈빛은 살아서 우리와 교감하는 듯했다. 포상을 받은 유공자와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에게 고개 숙여 묵상했다. “죽음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우리가 이렇게 기억하는 한 당신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름 없는 뭇별들이 은하수를 이루어 우주를 밝히고 있을 것이다. 사립소안학교는 지금도 도서관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역시 학교다. ‘배움이 곧 항일’이라고 했단다.
푸른 바다 위 초록 섬은 그 어디라도 아련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물며 보길도라니. 세연정은 자연과 사람이 같이 지은 예술작품이다. 들어갈 수 없어 낮은 담장 너머로 계곡을 보았다. 정자 옆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자태가 의연하다. 어쩌면 ‘오우가’의 두 번째 벗인지도 모른다. 부용동에 한나절만 머물러도 누군들 시 한 수쯤 읊지 못하랴. 그는 여기서 거의 12년을 살았으니, 책 읽고 글 쓰고 제자들을 기르는 데 부족하지 않은 세월이었으리라. 세상에…. 이 정원을 바로 옆에서 매일 보는 아이들이 있다. 보길초등학교는 세연정과 이웃해 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윤선도의 제자들 아닌가. 그의 어린 제자들이 놀다 두고 간 축구공 몇 개가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2군악 보존회의 공연도 인상적이었다. 늦은 저녁 시간 완도고 시청각실 무대에서 진행했지만 회원들의 다부진 결기는 사물 소리에 담겨 가슴을 울렸다.
어느새 마지막 날, 완도 객사 답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뒤편에 군립도서관이 있어 오가는 사람이 많을 터이니 객사는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몽돌이란 몽돌은 모두 모여 파도에 몸을 씻고 있는 정도리 해변에 갔다. 소설가 윤대녕은 이 구계등을 배경으로 소설 ‘천지간’을 썼다. 제20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억겁의 시간을 견디어 바위는 몽돌이 되고, 몽돌은 모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릇 생업에 매인 우리 나날은 고단하여 위무할 거리들이 필요한데, 그중 으뜸은 이야기와 드라마이다. 먼지 나는 고서의 장면들도 생생하게 재현하여 보여주는 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무미한 일상을 건너간다. 역사극 촬영지 청해 포구에서 잠시 쉬었다. 


수목원에선 난대림이 모여 자라는 깊은 숲에서 시원한 바람 불어와 더위에 지친 우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젊은 엄마 아빠와 나들이 와서 잉어 무리에게 먹이를 주며 환호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보다 청량하였다.
향교에 가면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되는 것은 왜일까? 건물은 사람의 발길이 머물고 손길이 닿을 때 살아난다. 보통 향교나 서원은 조악하게 페인트칠 된 나무문에 커다란 자물쇠가 달려 있다. 요즘엔 더러 지역 문화원 주관으로 문화행사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놀고 머무는 공간의 기능을 하는 향교를 상상해 본다. 마을학교나 마을 문화공간으로 되살리는 게 진정한 보존은 아닐까? 마을 가운데 자리한 완도 향교는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연수에 함께한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내가 왜 이제야 아는지’ 자책하고 ‘너무 늦게 알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야 알지만 아이들에게는 어서 알려줘야겠다. 남도의 선생님들만이 아니라 경상 부산 충청 강원 서울 경기 등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교사는 누구나 대한민국의 교사이다. 또한 한 분의 교사 뒤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있다. 고매하고 치열한 정신과 문화로 아이들에게 단단한 삶의 기틀을 마련되는 계기가 된 순간, 별처럼 반짝인다.

 

강정희 강진작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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