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예송리 해변에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0.08 15:49
  • 수정 2021.10.11 11:1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송리 해변에서 
                         김민정 


돌 구르는 밤의 저쪽 퍼덕이는 검은 비늘 
등솔기며 머릿결에 청청히 내린 별빛 
저마다 아픈 보석으로 이 한 밤을 대낀다

낙지회 한 접시에 먼 바다가 살아오고
맥주 한 잔이면 적막도 넘치느니 
물새는 벼랑에 자고 어화등漁火燈이 떨고 있다

당신의 말씀 이후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삭망의 별빛 속에 드러나는 능선이며 
때로는 샛별 하나쯤 띄울 줄도 아는 바다 

가슴 속을 두드리며 깨어나는 말씀들이
맷돌에 갈린 듯이 내 사랑에 앙금지면 
바다도 고운 사랑 앞에 설레이며 누웠다

 

 ‘예송리 해변’은 보길도에 있다. 소나무가 예술적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조시인 윤선도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곳이다. 이 해변의 특이한 점은 검은 자갈해변이라는 것이다. 파도가 밀려와 자갈들을 적시면 그 작은 오석들은 반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진 모습은 그대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작고 고운 자갈이 깔려있는 해변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짜르륵짜르륵’하고 그곳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파도소리를 내는 것이 퍽 낭만적이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보길도에 가 보고 싶었고, 아름답다는 ‘예송리 해변’부터 보러 갔던 것이다. 그곳 예송리 해변에서 하룻밤 민박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밤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바다를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객이 많지 않아 해변은 조용했고, 불빛 한 점 안 보이는 캄캄한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고 달빛조차 없는 밤바다 앞에 그대 서본 일이 있는가. 먼 하늘에 별빛만이 반짝이는 밤, 우주의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 끊임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 


그 파도소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몇 천 년, 아니 몇 만 년 전부터 철썩였을 것이고, 우리가 가고 없는 몇 천 년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자연에 비해 백 년도 안 되는 생을 살다가는 인간은 자연의 영원성 앞에 서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느끼는 밤이었다. 


1984년 예송리 해변을 다녀오고, 1985년 봄에 《시조문학》 창간25주년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예송리 해변에서」로 장원을 하고 등단을 하게 되었다. 1981년 시조를 쓰기 시작하여 1985년 등단 이후 지금껏 시조를 쓰면서 11권의 개인시조집과 3권의 공동시조집, 1권의 수필집, 2권의 논문집, 2권의 평설집 등 시조관련 19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37년이 지난 예송리 해변,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약력> 강원 삼척 도계 출생. 시조시인. 문학박사(성균관대). 대학원 출강. 1985년《시조문학》지상백일장 장원 등단. (사)한국문협 시조분과 회장.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자문위원 등. 시조집 『꽃, 그 순간』『함께 가는 길』외 9권. 영문번역시조집 『해돋이』(303인 현대시조선집), 스페인어시조번역집 『시조, 꽃 피다』(333인 현대시조선집).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외. 수필집『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평설집『모든 순간은 꽃이다』외 1권. 한국문협작가상, 대한민국문화예술공로상 외 수상.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