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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료를 단 한번도 구독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창간특집 인터뷰/김정호 발행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9.17 13:06
  • 수정 2021.09.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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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주> 신문사 발행인이 신문지면에 등장하는 것을 많이 봐 온 탓에 되도록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낯부끄러움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현장을 떠난 사람은 지면에 자주 나타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며, 그 무엇보다도 완도신문의 주인공은 지역 주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완도신문을 둘러싸고 특혜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건전한 공론의 장이 되어야할 전국공무원노조완도군지부 홈페이지에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마녀사냥 하듯 완도신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 자청해서 인터뷰를 요청하였음을 밝힙니다.


인터뷰 취재 정지승/다큐사진가

 

1. 김정호 대표에게 완도신문이란? 굳이 완도신문 역할을 강조한다면?


내 삶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공유물입니다. 한 번도 사적인 소유물로 생각 해 본적 없습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참여해 잘 가꾸고 다듬어서 지역 주민의 신뢰를 받는 언론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주민 모두가 관심 갖고 지켜야할 공공재산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완도신문과 김정호의 숙명이지요. 부족함 많은 제가 지금껏 완도신문대표 자리에 있으니 말입니다. 31년 전, 창간 당시 참다운 지역 언론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갈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창간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완도에는 아직도 변변한 시민단체 하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종종 목소리가 큰 개인의 소리가 여론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요. 최근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군수 측근 잔여백신 특혜 의혹도 그렇습니다. 군수 측근이라고 단정한 부분도 본인이 인정하기 전까지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니편내편으로 가르는 것은 흑백논리일 뿐입니다. 완도신문은 이때 백신특혜의혹 논란보다 담당 공무원의 수고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를 했습니다. 밤낮없이 고생하는 공무원들의 노고를 말하려했다고 편집국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절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의료원 공무원들이 흘린 구슬땀은 진실이고, 완도신문은 그것을 말하려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기자시절 지키려고 했던 것은 국가도, 애국도 아닌, 진실이라고 했던 것처럼 완도신문도 진실을 추구하는데 게으르지 않은 신문이 되어야합니다. 완도신문을 보면 완도의 실체가 보이고, 우리사회에 공동체 가치를 만드는 신문이 되길 저는 희망합니다. 

 

2. 최근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던‘완도생활문화센터’카페 입점과 관련해 소회를 밝힌다면?

 

완도신문과 연관성이 있다는 시각은 인정하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카페와 빙그레시네마 위탁운영을 맡은 완도문화나눔협동조합 설립 배경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완도신문에서 추진해 운영하다 현재는 완도문화나눔협동조합에서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영화관이 있습니다. 


2014년인지 2015년인지 또렷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완도신문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가 난 해가 있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섬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공익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기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 생생한 기사를 발굴하고 섬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지면에 채워서 알찬 신문으로 독자들께 보답하려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문사 자체운영비로 감당하기 힘들어 고심할 때쯤 빙그레시네마에서 근무하면서 자원봉사가 정규직보다 일용직 알바를 주장하는 대기업 횡포를 목격하면서 “주체적으로 삶을 질을 높이고, 영상문화의 질을 높이고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구조는 우리 스스로 만들자”는 취지로 완도문화나눔협동조합이 설립하여 사업의 목적이 같아 찾아가는 영화관사업을 이관한 것입니다. 완도문화나눔협동조합은 이뿐 아니라 지역 젊은이들이 지역에 거점을 두고 정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고 해서 청년일자리 창출이라는 사업까지 하게 됐고, 카페도 그런 차원에서 지역의 젊은 일꾼을 전문화하여 정착시키고자 목적을 두고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별개의 사업을 같이 묶어서 완도신문이 무슨 큰 이권에 개입한 것처럼 하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시각입니다. 개인적인 명예는 어찌됐든 이해 못할 일 없는데 완도신문 명예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3. 전국공무원노조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김 대표를 신우철 군수 측근이라는 주장이 있던데, 이에 답변을 한다면?

 

군수와 언론인 관계를 글쓴이의 시각으로 설정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신군수와 저와의 관계는 군수와 언론인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김종식 군수 시절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단순하다. 겪어 보고 판단해서 설정한 관계다. 내가 겪은 김군수는 사람과 사람 간 평등하게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를 설정하려했다. 처음 마주한 언론인에게 나는 부탁만 받고 사는 사람이다. 무슨 부탁이든 해라 그러면 도와주겠다는 식이다. 

 

그리고 직접 전화해 불편한 신문기사를 빼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또 전공노와 관계도 양보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렸다. 인사 불이익으로 응징했다, 또 이를 지적한 완도신문을 구독, 취재거부로 대응했고, 정치인과 짜고 자신을 공격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았다. 이후 12년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까지 미안하다 고맙다 화해를 시도한 적도 없다. 결국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 됐고, 아직도 김군수에 의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 아니다. 그래서 그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다. 


신군수는 달랐다. 완도신문 비판 기사에 단 한 번도 반응한 적 없다. 기사를 가지고 신문사나 나에게 지금껏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지역사회 후배인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 놓은 적 없다. 전공노 출신 직원들 인사도 공평하게 진행했다.  


4. 완도신문에 재직한 후 직원들이 지역 내 또 다른 신문을 만들고 이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갈등이 있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31년 전 완도는 언론사를 창간할 인적자원이 부족했지만 인터넷, SNS발달로 자료나 정보가 발달해 누구나 기자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비단 완도뿐만 아니라 타 지역도 같은 실정입니다. 그동안 완도신문이라는 창구를 통해 인력이 배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논조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민이 중심이 되는 언론을 만든다면 지역 언론의 풍토가 좋아지겠지요. 선의의 경쟁만은 환영합니다. 

 

5. 지역 여론이 완도신문은 편집권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도 있던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김 대표의 편집권 독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발행인과 편집국은 어떤 관계였으면 좋겠는가?


완도신문은 100% 편집권 독립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간 후배들도 인정한 부분이구요. 만약 완도신문에서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칩시다. 별의 별소리를 다 듣고 가장 큰 논란거리로 떠올랐을 겁니다. 


어느 언론사든 편집권 독립은 보장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경영인과 기사를 다루는 데스크 시각 차이가 있겠으나 기사를 생산하여 만드는 과정은 편집국장의 책임입니다. 편집권 독립은 필요합니다. 단지 인력이 턱 없이 모자란 지역신문에서 가능하냐는 것인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권력을 내려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완도신문이 관변지가 됐다느니, 소설을 쓴다든지, 독자들 시각은 틀린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편집국장이냐에 따라 논조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 시각은 총평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흘려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편집국장이 위임 받은 권한을 남용했을 때 견제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완도신문의 경우 독자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면서 그때그때 신문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지금은 흐지부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권한을 가진 편집국장이 제작한 신문기사는 주민 중심으로 채워야한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편집권 독립은 어쩌면 편집국장의 가장 외롭고 힘든 싸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발행인과 편집국장의 관계는 같은 방향을 향하는 동지적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결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급한 성격도 그것 중 하나입니다. 모든 문제들이 신문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해결되기를 희망합니다. 

 

6. 기억에 남는 언론인이 있다면?

 

우리나라 지역신문 대표주자가 해남신문과 옥천신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옥천신문 대표를 지냈던 오한흥 대표와 사이가 각별한데, 어려운 시기마다 서로 격려하고 의논하면서 더 나은 지역신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항상 관심 갖고 격려해주신 옥천신문 오한흥 전 대표께 이번호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7. 완도신문을 경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합니다.

 

맨날 상처밖에 없는데, 좋은 기억이 있겠습니까?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려고 하다 겪은 어려움은 언론인으로서 감당해야할 몫이라 여기고, 어려운 경영 때문에 매달 인쇄비 마련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제일 또렷합니다. 지난주 창간사에서도 밝혔듯이 경영난에 허덕일 때,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독자분들과 거액을 선뜻 기부해 주신 많은 분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해마다 좋은 신문으로 보답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31년 동안 지역 언론 풍토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5~6개의 지역 언론사가 생겼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꼬박꼬박 구독료를 납부하면서 완도신문을 구독해주신 독자분들은 단순히 신문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부대낀 끈끈한 관계 이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매주 비슷비슷한 내용, 별반 다를 것 없는 신문, 저는 지금껏 구독료라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완도신문을 후원하는 후원금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매주 불안하고 서툴지만 빼먹지 않고 발행하는 기특함에 후원도 있을 것이고, 좀 더 잘해보라고 후원의 의미도 있을 겁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두고두고 갚을 방법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완도신문 구독자여러분 항상 감사합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십시오. 

 

김정호 본보 발행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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