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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홍비 님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습니다”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1.09.03 13:54
  • 수정 2021.09.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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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사슴의 놀란 눈망울을 가졌는데, 속기 앞에 앉기만 하면 한 점 빈틈없는 초절정의 무사의 모습 그대로. 
그 빠르기로 치면 한줄기 바람이 광활한 벌판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데, 유려하기는 율동하는 나비의 필체 그대로.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가 그려낸 푸른 언어들을 꽃으로 읽는 글씨, 완도군의회 정홍비 속기 공무원. 

 

 

그가 하는 일은 완도군의 각종 현안들에 대하여 완도군의회의 본회의와 각 위원회에서(총 6개의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 임시회 및 정례회를 거쳐 의논하는데, 그 회의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군민들의 알 권리를 제공하는 것이 주 업무라고 했다.

 

군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완도군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대학생 때 친한 친구가 속기자격증이 있으면 고소득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속기공무원 시험에도 응시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속기 자격증을 취득한 뒤 광주 남구의회에서 고소득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속기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보람도 느끼면서, 공무원이라는 안정성이 부러워 도전해 합격했다고.

 

어려웠던 순간은 완도군 첫 속기공무원, 완도군에 단 1명뿐인 속기공무원이기 때문에 주변의 속기 업무에 대한 이해와 속기사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에 힘이 들었단다. 처음이 힘들었는데, 하나의 회의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자마자 회의록을 달라는 일이 많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고. 


속기사는 회의를 진행할 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면 속기록 초안을 가지고 3번 이상 다시 들으며 편집·교정·번문 작업을 거쳐야 정확한 회의록이 나오기 때문인데 그걸 혼자 속기부터 편집, 교정, 번문 과정을 해야 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에 부친다고. 한 번은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57조에 따라 회의가 끝난 날부터 30일 이내에 회의록을 게재해야 하는데, 그 기간을 지키지 못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소극행정 신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기간을 지키지 못해 감사에서 지적을 받아 억울하고 속상하기도 했다고. 


기뻤던 순간은 작년 의회사무과 사무실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택배 하나가 왔는데 ‘공유 자원의 사회생태계 –완도군 노화·보길의 30년 물 분쟁’이라는 한 권의 책과 편지였단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보낸 것으로, 그 편지에는 “이 논문은 정홍비 선생님의 노고가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그때 완도군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민들도 군의회 회의록에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싶었는데, 더욱 더 책임감을 느꼈고, 그 책임감을 가지고 만든 회의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고 보람찼다고. 


고마웠던 사람에 대해선 보통 속기라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고충을 전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데, "지금 의회사무과장인 이송현 과장님은 이러한 고충을 잘 이해해 주고 해결해 주는 감사한 분입니다. 하반기는 제일 바쁘고 힘든데요. 저의 고충을 의장님께 말씀해 주시고 또 의장님께서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 속기사라는 직업을 전문적으로 봐 주시면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남의 말을 받아 적는 단순히 타자를 치는 일,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겠냐?”라는 이들도 많은데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응원 부탁한다고. 


그러며 완도군의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해 완도군의 역사를 기록·보존하는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완도군의회 슬로건인 “군민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쁘다고하면 부끄러워 손사레부터 치는 그녀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나이 답지 않는 철학까지 돋보이는 군계일학, 군과 의회 통틀어 가장 아름답다는 그녀, 경희 씨도 인정한 그 말이 결코 헛되이 전하지 않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의 홍비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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