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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꽃잎의 음표가 휘날릴 때의 음율이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7.17 11:12
  • 수정 2021.07.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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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깊은 데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자연의 계곡물 소리도 어느 정도 규칙성을 갖고 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이미 자연에서 있는 음을 잡아 작곡하는 것으로 안다.
최상의 조화는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상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겠는가.


사랑이 이렇게 음악에서 시작됨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산길을 따라가는 데에서 높낮이 있어 음악이 되고 계절에 따라 음의 색이 달라지는 새소리. 봄은 아기자기한 소리. 여름에는 높은음자리. 가을에는 테너의 목소리. 겨울에는 부엉이의 낮은 음계. 산속에는 모든 소리를 담고 있다. 개울물 마음껏 끌어안아 연한 잎사귀를 만들고 언제가 꽃이 되기 위해 소나기에 흠뻑 젖기도 한다.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도 가끔 내려앉는다.

 


우리 어머니들은 꽃을 보면 혼잣말로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피었을까. 특히 큰앵초 꽃을 보면 다소 놀라운 눈빛으로 본다. 여름꽃 중에서 귀여운 꽃이다. 이른 봄에 꽃집에서 키 작은 앵초꽃이 보인다. 봄이 지나면 꽃대를 쑥 올린 큰앵초는 여러 차례 몇 송이씩 달려놓는다.


큰앵초는 앵초과 앵초속 여러해살이풀이다. 시원하고 약간 습한 숲속에서 자란다. 꽃받침과 꽃은 통으로 핀다. 이른 봄에 화단에서 피는 앵초꽃은 화려하게 핀다. 내년 내후년 필 것 같이 봄 햇살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년도 기약할 수 없다. 산에 사는 큰앵초는 자기들 스스로 생명줄을 이어가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한다. 가냘픈 꽃대에서 바람에 흔들린 대로 꽃을 달아 놓는다. 스러질 듯 다시 일어선 꽃잎들은 꽃잎 자체도 벌레가 먹어 완벽한 꽃잎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모여 몇 송이들이 층층이 피어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음을 증거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피었다. 산에 사는 즐거움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꽃이 오는 산길은 아주 험하다. 그 속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눈물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만의 아는 가난한 마음이 위로되었을 것이다. 숲속 가득한 여름날 뜬금없는 빨간 나리꽃도 그렇고 가냘프게 허리를 흔들어 꽃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큰애초 꽃도 그렇다. 세상 사는 것이 다 그렇듯 꼭 있어야 할 곳에 없음이 참으로 행복할 때가 많다.
그 많은 잎사귀로 돌려 쌓여 굵직한 꽃대에 제법 큰 꽃이 올라올지 알았는데 가냘픈 꽃대에 작은 꽃이 피었네. 산에 큰앵초꽃은 최소한 것들만 갖고 있다. 밖에서 부재한 것들은 안에서 충만하게 채우면 되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는 모두 음표가 된다. 큰앵초 꽃잎에도 다섯 개 꽃잎에 음악이 있다. 상처 나는 꽃잎에 생생한 음표가 있다는 것이 그들만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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