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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절한 빛이 내게로 올 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4.23 12:57
  • 수정 2021.04.2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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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귀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빛을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오래 전에 구입한 허름한 집 한 채가 있다.
단독으로 다섯 가구가 살 수 있는 다가구다.
그러니까 20년 전 덜컥 집을 사놓고 주인이 돈이 없어 반지하 방 한 칸에서 네 명이 살아야하는 깜깜한 현실같은 집이었다.

 

아들은 화장실이 무서운지 머리감는 것을 죽기보다 싫은 아이처럼 거부하고 떼를 쓰며 울었다. 달래도 보고 큰소리로 혼내고 두둘겨 패도 아들은 공포스럽게 울어댔다. 그런 아이를 잡고 머리에 샴푸를 하고 샤워기로 박박 씻겼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돈이란 돈은 그대로 모으고 모아 2년 후 1층 방 두 칸으로 올라갔다. 그때 아들 나이는 여섯살 실평수 10평 가량 되었겠다.


방이 두 개로 나뉘고 작은 부엌겸 거실인 집 빛이라곤 벽과 벽 사이 틈으로 지나가듯 들어왔다. 여섯살 짜리 아들이 벽에 두 손을 대며 "엄마 벽을 저리로 밀었으면 좋겠어." 아들의 말은 답답한 현실 그대로의 내마음과 같았다.
뒤돌아보기도 싫은 시간.... 늪같은 시간들...


모든 것을 단절하고 또 모이고 모이고 그렇게 2층에 올라갔다. 방 3개에 옥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붉은 벽돌집은 바람에 끄떡없지만 겨울에는 한기가 벽에서 뿜어나왔다. 보일러 비용까지 아끼던 그 시절에도 봄은 화려하게 빛으로 왔다. 옥상에 공그리를 치고 방수페인트 후 흙을 얹어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고추를 심고 오이를 심고 봉숭아를 심고 아침이면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널고 그동안 부족했던 빛을 만끽했다.

 

여름이면 빨간 다라에 물 담아 아이들 물놀이 하게 해주고 열대아로 후끈 거리는 여름밤에는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밤이 늦도록 놀다 잠들어 아침 해가 뜨거울 때 옥상에서 내려왔다. 여름더위가 꺼질 즘 배추를 심어 월동준비를 하고 심어놓은 수세미는 빨래줄에 대롱대롱 열매를 맺는 빛의 향연이 옥상에 그득그득했다. 병아리가 닭이 되고 강아지가 커서 어미개가 되는 동물농장 같은 집 이름이 방가비였던 토끼가 생각난다. 아들 세발자전거 뒤에 실고 방가비방가비 토끼이름을 불렀던 시간이 풍경처럼 그려지는 그곳의 시간이 쑤욱 올라왔다.
그리운 빛의 시공간이었겠다.


며칠 전에 아들과 그 집에 방문했다.
반지하 방 한 칸에서 할머니께서 사신다  아들을 보고 반가워하시는 할머니,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 연세가 65세셨는데 훌쩍 80세를 넘기셨다.마당에 앉아 신장 투석하시는 이야기,고물상 같이 늘어놓으신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미련의 짐들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몇년 전에 와서 치우시라 했던 말이 무색하게 흩어지고 고물이 더 많이 쌓였다. 죽으면 짊어지고 다니는 게 입던 옷이라고 버려야지버려야지 되뇌이던 엄마가 생각났다.
"싹 다 버리세요 당장 싹 다 버리세요"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말을 꾹 참았다.
그제서 들어오는 작은 화분 속 바위솔 옮긴지 얼마 안 된 바위솔을 두 뿌리만 달라고 조르니 옆집에 수북히 많다고 그 집 아저씨가 줬다하시길래 그곳에 가자 졸라 그 집에 갔다.
마침 아저씨가 손녀와 계단에 계셨다.
인사도 없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처럼 바위솔이 예뻐서 구경하러 왔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흔쾌히 구경하라 허락하셨다.


"이렇게 예쁜 바위솔 처음 봐요. 이렇게 소복히 어떻게 키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계속 쏟아부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바위솔을 선뜻 뽑아주셨다. 키우기 쉽다고 아주 잘 자라고 번식도 잘한다며 말이 없으신 아저씨가 말씀을 하셨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봉지에 싸들고 할머니께 자랑하며 "그 집 예전에 떡볶이 집이었는데 이사하시고 바뀌셨나 봐요." 여쭈니 그 집이 그 집이란다. 아줌마는 떡볶이 팔고 아저씨는 차떼기 마늘 장사하시던 그 집이란다.


아... 인사 할 걸 인사하면 알아보셨을까?
재훈이 엄마라고. 대리석 계단에 야생화를 가꾸시는아저씨에게서 꽃의 마음을 보았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다만 바위솔이 이쁘다이쁘다 감탄했을 뿐인데 선심을 낯선이에게 후하게 쓰실까. 아직도 그곳에는 바위솔처럼 잘자라 번식도 잘하는 정이 살아있나보다.
좁은 계단에 내리는 그 친절한 빛이 내게로 왔다.

 

이의숙/필수노동자, 에세이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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