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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리움으로 태어나 일상에 뿌리 내리고

에세이/ 김지민 수필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1.22 11:19
  • 수정 2021.01.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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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느낌의 기차역에 앉아 있고 싶은 계절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 매표소 안에 앉아 있고, 차곡차곡 쌓인 먼지가 그곳의 지나간 일들을 대변해 주는 대합실이면 더 좋겠다. 덜커덩거리는 나무 의자 몇 개가 줄지어 앉아 있으면 고단한 몸을 잠시 눕혀도 되는 곳, 오래된 역사에 앉아 있으면 기차가 들어올 때 붉게 녹슨 소리로 삐~익 경적을 울려 주는 그런 곳 말이다.

아마도 젊었던 시절, 고향으로 향하던 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난해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나날이 형체를 잃어가는 마당에 무성한 풀들만 생기가 도는 우리 집, 검게 색이 바랜 대들보가 흘러내린 지붕을 뚫고 나온 사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동안 껴안고 있던 기억을 뒤지며 마당을 서성거렸다. 가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리운 것들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아주 오랜만에 남쪽행 기차표를 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 승차지점에 앉아 있는데 스크린도어로 숨겨 놓은 철로가 낯설어서 두려움이 낮게 깔렸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어색함도 섞인 탓일 거다. 혼자 하는 여행은 마음 설레게 하는 은밀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니 무어라 단정 짓기 힘든 막연한 고독이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처량하게도 했다.

일부러 숙소는 일가 댁을 택하지 않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휴양원을 택했다. 고향 방문이 아닌 여행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내 고향 해남이 불쑥 눈으로 들어왔다. 일 년 내내 예쁜 곳이지만 가장 빛나는 건 가을이 푹 익었을 때다. 노란 물감이 엎질러진 것처럼 화려한 들판도,중간 중간 추수가 끝난 허허로운 논바닥도 풍요로 꽉 들어찼다.

들일하는 노인의 등처럼 완만하게 굽은 능선은 알록달록 색을 묻혀 붓질한 듯 곱다. 단출한 짐을 풀고 숙소 간이 의자에 앉아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낙엽을 본다. 나는 지금 남쪽 한적한 바닷가 마을 숲속에 있다. 서울 한강 뷰도 기죽일 풍경이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 했다. 활엽수 너머로 반물빛 바다가 보였다. 참 편하고 아늑한 게 엄마의 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번에 혼자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였다.

비릿한 바람을 맞으러 주섬주섬 겉옷을 걸쳤다. 숲길을 걷고 있자니 갈퀴질 소리와 솔가지를 쳐내는 낫질 소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다. 어디선가 엄마가 불러 줄 것만 같았다. 고향 언저리를 걷는다는 것은 내 엄마, 아버지한테 가고 있는 것처럼 순간순간 울컥하게 격한 감정이 일기도 했다. 

 밤이 깊어지자 내 숨소리도 거슬리게 들려질 만큼 고요가 휘감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이 꺼지고, 검은 천에 촘촘한 바느질 땀처럼 별이 뜨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처마 끝에 대롱대롱 걸려 소녀의 마음을 앗아간 그것과도 같은 빛이었다. 그렇게 난 다디단 꿈속으로 들어갔다. 빼꼼히 실눈을 뜨고 있다가 동살에 놀라 한참 넋을 잃었는데 그림 한 폭이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옆구리가 햇살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그 순간은 글로 표현 안 되는 벅찬 감동이든아니면 표현력의 한계로 밀쳐둔다.

 내가 자랐던 마을에는 농수로 사용하던 고만고만한 저수지가 몇 개 있었다. 
그중에 친구들과 멱 감으러 자주 갔던 곳을 둘러보고 싶어 다시 추억을 향해 달렸다. 흑암제 수면은 불콰하게 취한 나무들이 빠져 물빛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로 하늘빛이 겹치고. 또 그 위에는 구름이 행인처럼 기웃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생뚱맞게 친구들과 저수지 위에 떠 있는 마름을 따느라 정신없는 모양의 내가 툭 하고 튀어 올랐다. 고향에서는 어디를 가든, 어느 곳을 보든 모두 그리움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다. 해가 저무는 들판의 논두렁이 선명하게 드러나 특별한 까닭도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그 무엇도 수습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순간, 어쩌면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움 때문이었을 게다.

여행이란 늘 바닥에서 한 뼘쯤 붕 뜨게 했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라 산만해서였고, 의견이 어긋나 교차지점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관광이었다면, 이번엔 그때와는 달라서 조금은 애달픈 걸음걸이였다. 그러나 그 길에는 지나간 시간 속의 얼굴을 그려보는 사색이 있어서 잔잔했고, 아름다운 적막이 있었다. 산다는 게 기억 속을 떠다니는 그리움들이 들고나는 바닷물과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겁 없는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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