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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몸살 하느라 고생했네!”

[에세이-청산 모도에서] 박소현 / 청산 모도보건진료소 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5.19 14:35
  • 수정 2019.05.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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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청산 모도보건진료소 소장

매화꽃

올망졸망 이리도 흐드러지게 피어
자꾸만 가까이 가까이
눈을 맞추게 하는
너는 누구냐!

아직은 아가궁둥이 복숭아마냥
분홍색 꽃받침 위에 앉아
해맑은 아가미소 흰얼굴에
노랑 수술로 너의 밝음 내밀며
온 사방 달콤달콤
아가향기마냥 코 가져다 대게 하는
너는 누구냐!

손톱만한 작은 너 살포시 하나 떼어
내 머리에 꼽고
홀로 걷는 산으로 난 길
너와 함께 걸으려다
너 훗날 자라 큰 열매가 될까
너를 내 눈에 담고
가던 길을 가련다.

엊그제 한 선배님이 전화를 하셔서, “꽃 몸살 심하게 앓았구먼. 고생했다! 그러니 봄이 아니겠는가?” 하신다. 그러고보니, 경로당 다녀오다 제 온몸을 이기지도 못할 만큼 흐드러지게 매화꽃을 피워낸 나무를 보고 저 시를 지은 날, 나의 봄은 시작되었다.

겨우내 꽁꽁 언 눈물이 따사로와진 햇살에 말라가는 것을 바람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대며, 내 콩알같은 소심한 가슴을 앓게 했다. 사춘기도 아닌데 고작 봄이 왔다고, 앓이 하던 나는, 틈이 나면 무조건 나갔다.

어느곳에나 봄이 있었고, 땅에서 나오는 모든 생명들이 혹독한 꽃 몸살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 내눈에 보이자, 비로소 알게 되더라.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맡기되, 다만 저 풀 한포기, 고사리 한 가닥도 다 이겨내고 꽃 몸살 추스르고 돋는 거 아닌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뭔가 움트려면 아플 수 밖에 없고,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니 모도에 매화 꽃이 피어오르기 전, 아끼던 곳에 매년 먼저 돋는 매화꽃을 보신 선배님이 내게 전화주셨을 때, 꺼이꺼이 우느라 답도 못하고 수화기만 들고 있다.

선배님이 내게 전해주신 매화꽃의 의미를 잃고 싶지 않아 급히 적은 시가 또 하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든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냥 힘내라 하는 한마디보단, 이 시가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길!

매화야 왔느냐 드디어 왔느냐.
곰도 뱀도 개구리도 다 잠든 이 겨울에
너는 어찌 벌써 꽃을 피우려 하느냐.

이것은 너의 의식.
너의 혹독히도 추운 날의 고뇌와 확고한 의지가 비로소 마음을 결정하여 이루어 낸 결과.
다른 꽃들은 그저 혹자의 마음을 홀리려
곱디 곱게 단장하고
따수운 봄날을 기다려 피우련만
너는 분홍 치마저고리에 볼터치만 한
민낯으로 나에게 가장 먼저 와주었구나.

어서오너라 매화야.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매마르디 매마른
입을 가진 너라한들
어찌 내가 너를 내 눈에 담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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