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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 불어와도[완도의 자생식물] 87. 천남성
신복남 기자 | 승인 2019.03.15 09:59

연초록 햇살에 붉어진 철쭉이 머무는 산빛도 아직 산중이다. 개울물 쉼 없이 흘러 마을로 가는 첫사랑도 아직 산중에 있다.

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도 홀로 서있을지언정 천남성은 아직 산중에서 슬픈 사람들의 체온을 데우는 저 새벽별이 초록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 생과 사 그 간극에다 쓰디쓴 인생사를 펼쳐 놓고 나뭇가지 사이에 맑은 바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꽃은 지고 연한 초록이 돋아나는 경계에서 슬픔이 문을 열고 있다.

슬픔의 응어리가 터져야 눈물이 되고 마음속에 독을 풀어내야 비로소 산중에 맑은 빛이 들어온다. 산중에 모든 녹빛을 담는 천남성. 순한 소리를 듣는 귀에는 꽃을 여는 마음을 가졌다. 천남성은 초록의 빛을 고스란히 담을 만큼 꽃차례를 싸고 있다. 모자처럼 생긴 포, 불염포라고 한다. 그 속에 꽃이 들어있다. 꽃 속에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주로 밤에 꽃이 피우며 오므렸다 벌렸다 한다. 이것은 따뜻한 곳을 찾는 야행성 곤충들을 유인하여 가루받이한다고 한다.

천남성은 암수딴 그루이지만 환경여건에 따라 해를 달리하여 성전환하기도 하는 신기한 야생화이다. 어린 천남성은 자주색 꽃밥이 있는 수꽃이지만 커지면 암꽃으로 성전환을 한다. 한번 암꽃으로 열매를 건실하게 맺으면 이듬해는 꽃이 피지 않거나 수꽃으로 핀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다음에 수꽃으로 피어 생명을 유지하면서 후손을 안전하게 번식하는 방식이다.

천남성은 예로부터 백부자와 함께 재료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천남성은 약성이 강하고 양의 기운 중에서도 극양에 속하여 남쪽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기운을 갖춘 야생초라 하여 천남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꽃은 5월에 절정을 이루고 가을에 빨간 옥수수 모양으로 열매를 맺는다. 연초록의 산빛 아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초록 꽃 나팔처럼 꽃잎 없이 꽃술만 안고 있다. 전혀 독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핀다. 바라만 보아도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천남성에서 독한 마음이 선해지도록 천남성 안에서 지난날 독들이 쌓여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연록의 맑은 얼굴을 지닌 천남성. 그러나 끝나버린 사랑의 순간들이 서러워서 독이 되었다. 봄여름 가을 지나도록 얼마나 그리우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갈 길이 따로 있다고 원망할까. 독한 사람들만이 그리움을 가졌을까. 어차피 맺지 못할 너와 나의 사랑은 붉게 물든 노을이 된다는 것을.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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