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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아,

[단편 소설]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23:33
  • 수정 2019.01.2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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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다깨다를 반복하며 5교시를 가로샜다. 오전 네 시간이 실습인 오후는 거의 그랬다. 식후인 데다 여름까지 겹쳐져서 더 그랬다. 그 수업들로 대학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래졌다. 쉰 명이 넘는 애들이 화생방 가스실에라도 든 것처럼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어빡자빡 널브러진 쉬는시간이다. 아니 자는 시간이다.

“정해진! 면회!”

잠 속에 엎드려 있는지라 내 이름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야! 너 면회 왔다고.”

누군가가 등거리를 툭, 친다.

“미쳤냐, 너!”

오후나절이 다 지나고 있는데 면회란다. 시답잖게 받으며 고개를 모로 돌린다.

“진짜야 임마!”

녀석이 머리를 밀어 올려 기어이 나를 잠 밖으로 끌어낸다.

“어머니가 오신 모양인데, 교무실로 가봐!”

올려다본 녀석의 얼굴은, 너는 좋겠다는 듯 싱글생글이다.

“너, 맛이 갔구나. 우리 어머니가 여기는 왜 와?”

남쪽 외딴 섬의 땡볕 아래에서 콩밭을 매거나, 거머리가 장딴지를 빠는 것도 모른 채 피사리를 하거나, 물때썰때 맞춰 갯것을 하고 있을 어머니다. 전쟁이 터졌대도 못 데리러 온다. 그러니 ‘어머니의 면회’라는 말은 전쟁이 났다는 소리만큼이나 생뚱스럽다.

“너, 거짓말하면 죽는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가보기나 하라니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몸을 일으킨다. 녀석이 ‘반장’이기도 해서였다.

“근데 왜 교무실이냐?”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지라 외부인을 만나는 통로는 면회밖에 없고, 면회는 교문 옆 매점에서 이루어진다.

“나도 몰라 임마! 야튼 담임이 빨리 오래.”

차임벨 소리가 수업시간을 알린다. 공업고등학교의 들으나마나한 그렇고그런 수업이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몰라도 우선은 수업을 빠질 수 있어 좋기는 하다. 꾸무럭거리며 일어나 꾸역꾸역 교실을 나선다.

한여름의 교무실은 파장 뒤의 장터 같다. 수업이 있는 책상들은 이런저런 것들로 헤들어 있고, 수업이 빈 대여섯 책상들은 선생님들로 엎드려졌다. 그럼 그렇지, 면회는 무슨? 반장이고 나발이고 녀석은 이제 나한테 죽었다. 속으로 뿌다구니를 내며 돌아서려는데 저 안쪽의 소파에 오종종하니 앉아 있는 아낙이 눈에 띈다. 눈을 비벼본다. 그 아낙이 맞는 것도 같다. 이상하다 싶어 두어 걸음 걸어가 본다. 섬에 있어야 할 그 아낙이다. 때 아닌 왜구라도 쳐들어왔나? 무장공비가 떼거리로 상륙이라도 한 건가? 어리뚱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웬일인지 선뜻 다가가 지지가 않는다.

이쪽을 알아보았는지 아낙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칫지칫 걸어온다. 들에 나갈 때처럼 머리에는 수건을 썼다. 때에 전 윗도리에 몸뻬를 받쳐 입었고, 발에는 아무렇게나 끌고 다니는 보라색 막슬리퍼가 꿰였다. 밭일을 하다 저녁밥이 늦을세라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거나, 산에서 물거리 한 동을 해 이고 내려와 검불을 털고 난 품이다. 면소재지에 갈 때일지라도 그런 차림새는 않을 듯싶다. 그런 꼴로 아낙은 백여 명의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교무실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머리에 얼음동이가 쏟아지는 듯하다.

“나가세.”

데설궂게 아낙을 맞고는 바로 되돌아선다. 서둘러 교무실을 나와 계단을 타닥거려 건물 밖으로 나선다. 팔월의 뙤약볕이 이마를 쫀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서 흘낏 뒤를 돌아본다. 아낙은 계단의 중간쯤을 걸어 내리고 있다. 계단 끝에 길게 박힌 잘 닦인 신주가 햇빛에 반짝인다. 그것을 밟을까 싶어 조심조심 징검징검 발을 딛는 아낙이다.

걸음을 빨리한다. 수업 중인 친구들이 볼까 저어된다. 면회 왔다는 소식은 교실에 벌써 퍼졌을 터이고, 몇몇 녀석은 창문을 넘어다보고 있을 것이다. 여학생과 함께면 휘파람을 불어대겠지만, 추레한 아낙의 모습에는 모두들 혀를 찰 것이다. 그러면서 흥야항야 삽지지겠지.

“해진이네 어머니 완전 촌사람이네.”

“아무리 섬사람이라도 저건 좀 지나치다 아니가!”

“일하다 밭에서 그대로 온겨?”

녀석들이 눈치 못 채게 아낙에게서 멀찌막이 떨어져야겠다. 걸음을 잰다. 교실을 한참 지난 곳에서 아낙을 기다린다.

“옷 갈아입고 나올랑께 저기 수위실 옆에서 기다리시요.”

수위실을 가리키고는 기숙사로 향한다. 학교 안에서는 간편한 실습복 차림이지만 밖으로 나갈 때는 교복을 착용해야 한다.

관물대에서 교복을 꺼내 갈아입고는 가방 밑에서 수첩을 꺼낸다. 아낙이 보내준 오천 원에서, 당길 때마다 살짝씩 깎여 나가는 대팻밥처럼 이리 쓰고 저리 남은 천 원짜리 두 장이 책갈피에 꽂혔다. 그것을 챙겨들고 기숙사를 나선다. 이마에는 다시 불김 같은 볕이다.

아낙이 안 왔었으면 좋았겠다. 학생들 대부분이 시골 출신인지라 부모들 역시 메떨어진 차림새였다. 나름대로 단장을 하고 왔겠지만, 한눈에도 농사를 짓거나 배를 타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부모도 그네들과 진배없으렷다. 그래서 제주도보다 오기 힘든 낙도라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졸업 때까지 부모의 초라한 행색을 친구들에게 보일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추레한 아낙이 나타난 것이다. 이왕 생겨나 있는 일, 빨리 돌려보내는 도리밖에 없다. 걸음을 서두른다.

아낙은 수위실 옆에 앉아 있다. 아까까지는 없던 보퉁이가 앞에 놓였다. 들어오면서 수위실에 맡겼던 모양이다.

“해진아, 이거 한 지대 선생님 드리끄나?”

수위실 앞에 이르자 아낙이 보따리를 끄르며 길쭘한 멸치 포대를 꺼낸다. 짙은 갯내가 화드득 코에 끼친다. 후미진 섬에서 가져 온 후줄근한 냄새다.

“뭔 멸치를 다 선생님 드린다요!”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한다.

“멀리서 온 건데 드리믄 좋제야.”

아낙이 밀긋이 올려다본다.

“도로 싸시요, 얼른!”

불퉁스런 반응에 보자기 끝을 훌치면서도 아낙은 못내 아쉬운 낯빛이다.

“사람이 어디든지 빈얄로 가믄 안되는 건데” 하며 보퉁이를 이더니,

“선생님이 욕 안하끄나?” 하고 뒷동을 단다.

못 들은 척 교문을 나선다. 따라오던 아낙의 말은 교문의 턱에 걸려 비치적댄다.

찜부럭이 난다. 이 무더운 날씨에 보퉁이를 인 촌스런 아낙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문에서 훌쩍 보낼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버스는 태워 보내야지 싶다. 대구에 이모님이 있으니 공단 터미널까지만 가자. 창피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바래다주는 수밖에.

힐끗 뒤를 돌아본다. 아낙은 너덧 발짝 저만큼이다. 걸음을 빨리해 욱걷는다. 누가 부르는 듯해 뒤를 돌아본다. 아낙이 여남은 발짝 저만치다. 싸게싸게 따라오제나 해찰이다. 맞갖잖지만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아야 해진아, 이리꾸 한 지대, 선생님 드리고 가믄 어차것니?”

가쁘게 걸어온 아낙이 다시 멸치 타령이다.

“비싼것 같으면 몰라도 쪽팔리게 무슨 멸치를 다 선생님 드린다요? 누가 촌사람 아니랄까마니.”

씨우적거리며 시선을 돌린다.

“비싼것은 아니래도, 멀리서 온 귀한것이께 드리믄 어찬다냐?”

아낙의 목소리가 간절하다.

“그것이 엄니한테나 귀하지 그 사람들한테 뭐가 귀하다요? 냄새만 풀풀 나구마는.”

섟을 내며 발을 뗀다.

“암만 그래도, 선생님 만내는데 빈얄로 왔다 가믄 쓰끄나? 영 사람 도리가 아닌 성 부르다마는.”

아낙은 더 이상 못 뻗대고 말끝을 사린다.

“그나저나 뭔 일로 여기까지 왔소?”

흘낏 돌아보며 묻는다.

말린 퇴비를 메꼬리에 꾹꾹 눌러 이고 허덕허덕 치받이 길을 올라야 할 사람이, 소꼴을 묶어 이고 조심조심 논둑길을 걸어야 할 아낙이, 그런데 지금 멸치 두 지대를 머리에 이고 경상북도 구미의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 것이다. 저곳과 이곳이 도무지 연결이 안된다.

“오따, 말도 마라.”

서너 발짝 걸어온 아낙이 걸음을 멈추며 허리를 편다. 임으로 얹힌 보퉁이가 눈높이만큼 올라온다.

“그랑께 머시냐…, 가용 잔 벌어본다고 윳집 성님이랑 멜치 멫 지대를 갖고 나왔어야.”

아낙이 살풋이 고개를 들며 말을 잇는다. 길쭘한 임이 아낙의 얼굴에 손바닥만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금방 멸치 장사 나왔다 했는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묻는다.

“이이. 멜치 폴로 나왔다야.”

대수롭지 않는 투로 말을 받고는 아낙은 걸음을 뗀다.

뙤약볕 아래서 콩밭을 매든가, 푸르러가는 논에 들어 이틈을 매야 할 사람이 멸치를 팔러 왔단다. 소 진줄 뜯어먹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설혹 배가 고파 헤까닥한 눈에 푸른 바다가 고구마 밭으로 보였을지라도 소가 어떻게 짜디짠 진줄을 고구마 순처럼 아작아작 뜯어 먹겠는가.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장사를 다 해라우?”

섬에서도 장사는 좀 낮게 취급되었다. 몇몇 아낙들이 다라에 생선을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발품을 팔며 다녔지만 그것은 농사지을 전답이 없는 사람들의 밥벌이였다. 이녁 땅에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 눈에는 고샅마다 집집마다 훑고 다니는 그 꼴이 영 천해 보였으리라. 거기에 장사치를 낮춰보는 옛날의 인식도 덧들었을 테고. 그런데 땅만 파먹던 사람이 그런 일을 하려고 이 경상도 땅에까지 왔다는 것이다. 미치고 팔짝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믄 어쩔 것이냐? 한여름이라 일도 벨로 없어 펜펜 자빠져 노는디.” 하며 슬쩍 돌아보고는, “집에 가만히 있어봐야 돈이 나온다냐 떡이 나온다냐. 한 닢이라도 벌어 가용 쓰는 거이 낫제.” 한다.

그깟 가용 몇 푼 벌기 위해 저리 후줄근한 행색으로 이리 멀리까지 왔단 말인가.

“엄니가 참말로 멸치를 이고 장사를 나왔다 이말이요?”

아낙은 뒷짐인 채로다. 멸치 두 지대를 싼 보퉁이는 거기가 가장 편한 자리인 듯 머리 위에 덩그러니 잘도 앉았다. 물동이든 소매동이든, 보릿뭇이든 나락뭇이든, 소꼴이든 메꼬리든,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머리 위에 얹히고 나면 일부러 부리지 않는 이상 그것들은 딸싹 않고 거기 딱 얹혔었다. 임을 인 아낙들은 또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두 손은 뒷짐을 졌고 그래서 그것은 그니들의 기본자세가 되었다. 그 정도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세월을 임으로 이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만큼은 돼야 보로시 ‘아낙’ 축에 낄 수 있었다.

“도둑질만 아니믄 세상에 못할 일이 뭐 있다냐? 이녁이 애써서 번단데 누가 뭐란다냐?”

멸치 보퉁이를 인 저리도 추레한 꼴로 도시의 복판을 걷는 것이 아낙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듯하다. 임을 얹고도 자유로운 두 팔처럼 아낙은 그런 것에서부터는 진즉에 벗어나 버린지 모르겠다.

“사람 미치것네라.”

아낙이 멸치장사를 나온 건 확실해졌다.

“글믄 둘이 나왔다면서 그 숙모는 어쩌고 혼자 왔는가?”

“참 얼척없이 되얐다야.”

아낙이 잠깐 걸음을 멈추며 혼잣말처럼 울절거리더니, 발걸음을 떼며 그 위에 말을 얹는다.

“긍께 말이다이, 그거이 어찌된 영문인가 하믄.” 하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냥 광주서 폴아도 될 것인디야, 그 성님이 한 닢이라도 더 받어보잠서 기언질 대전으로 가자냐 안. 딸네 집 있으께 갠짐하담서야. 그래서 그 요량에 따러나섰제. 휴우!”

말끝에 해녀들의 휫개소리 같은 긴 한숨이 달린다. 그럴만한 사정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무선지도 모르고 역 마당케다가 멜치를 핐는디야, 금메 금세 폴려부러야. 시골서 직접 잡어 왔다 긍께 사람들이 아주 사죽을 못시든마.”

아낙의 말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차비 들어 왔어도 잘했다 싶드라께. 광주서 그놈 폴라믄 사날은 걸릴 건디, 한나절도 안돼 금방 폴아분께 겁나 좋냐 안. 다 폴리고 보로시 두 지대 남었어야. 인자 그놈만 폴믄 핑 내레가 지것다고 마음이 바뻐졌네라.”

장사가 잘돼 신이 났던 모양이다.

“그란데 금메, 어디서 호리락소리가 나냐 안. 뭔일이다냐 함시로 우긋이 있는데야, 옆엣사람들이 짐을 챙게들고 후다닥 도망을 치는 거여. 그라께 우리도 언능 멜치를 싸들고는 불판나게 도망을 쳤제. 그라다가 그 성님하고 질이 갈렜네라.”

늘어난 녹음테이프처럼 아낙의 말에서 맥이 빠져 나간다.

뙤약볕 아래의 역 광장에 보따리를 풀어 놓고 쭈그려 앉은 두 아낙, 우중우중 모여서서 멸치 좌판을 구경하는 사람들,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오는 경찰관, 서둘러 보따리를 싸 진둥한둥 달아나는 아낙들. 몇 개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참 깝깝한 아줌씨들이요이.”

아낙을 흘겨보며 한마디를 뱉는다. 그런 창피한 일이 어떻게 저 아낙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 딴 사람에게는 몰라도 저 아낙에게는 아니다. 얼굴이 벌개지는 느낌이다. 걸음을 서두른다.

안그래도 무거운데 뙤약볕까지 먹어서인지 모자가 한짐이다. 안쪽에 둥글게 테가 넣어져 각이 바짝 든 검정색 모자는 남색 동복과 짝이다. 쑥색의 가벼운 하복과는 전혀 안 어울린다. 할수없이 쓰고는 다니지만 여름에는 투구를 쓴 것처럼 거추장스럽다. 그렇다고 안 쓰거나 벗어 들 수도 없다. 그랬다가 선배들한테 걸리는 날에는 단체로 죽는 수가 있다. 공고인 데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거기에 하사관 후보생으로 군사교육까지 받는지라 군기가 해병대 저리 가라다. 그런 현실이니 아무도 볼 사람 없는 평일의 공단(工團) 뒷길인데도 모자 벗을 염을 못낸다. 내리쪼이는 팔월의 뙤약볕 아래 아낙도 아들도 저저금의 임을 이고 있는 꼴이다.

“그러면 거기서 기다려야지 혼자 와버리면 어쩐다요?”

걸음을 늦추며 따지듯 묻는다. 왔던 대로 되짚어 내려갔더라면 아낙의 길도 편했을 것이고, 뙤약볕 아래의 이 생고생도 없었을 터이다.

“그라께 성가실 일 아니냐.”

아낙이 서너 걸음 걸어오더니,

“이 성님도 잔 나와봤으믄 쓰것드라마는, 원체 겁이 많한 사람이라 어디로 도망체벤 모양이여.”

하며 발을 멈추고는,

“오떠으! 멜치 멫 지대 폴로 왔다가 질 잃고 사람 잃고 거지 되것드랑께.”

하며 길게 숨을 내쉰다.

“그러면 거기서 바로 차를 타고 내려가야지 여기는 뭘라고 왔소?”

“나도 그럴라 그랬제. 그래서 그 성님 지달린다고 보때리를 핐든 자리에 서너 식경을 앉았었냐 안. 그래도 항꾼에 왔으께 항꾼에 내레가야 안 쓰것다고?”

보퉁이에 쪼이는 땡볕에 눈이 따갑다.

“암만 지달레도 와야 말이제. 날은 오사게나 떤 데다 배할차 고파 오고야. 어채야 쓰까 하고 보께로, 오또곰세…, 인자 날까지 어둬져 와야!”

하며 골마리를 더듬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악아, 어디 가서 아이스께끼나 한나 사묵고 온나” 한다.

목이 마른 참 잘됐다 싶어 주위를 둘러본다. 보이는 건 높다란 공장들뿐이다. 공장들 위로는 팔월의 볕살만 깡깡하다.

“여기는 공단이어서 사 먹고 싶어도 상점이 없네.”

“그러기는 한다마는.”

아낙은 쯧쯧, 혀를 차고는,

“뭔노무 사람 산 데가 점빵도 한나 없이 이라끄나” 하며 천 원짜리를 다시 집어넣는다.

“안 뻐친가?”

이마에 등짝에 사타구니에 땀이 줄줄거린다. 임까지 이고 있는 아낙은 몇 곱이리라.

“뻐치기는 뭣이 뻐체야? 땡벹에 밭 매는 것에 대믄 안꿋도 아니제.”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땡볕 아래서의 피사리나 고추밭 매는 일이 아무리 사람을 갉는다 해도, 보릿뭇이나 나락뭇이나 거름 메꼬리가 시나브로 사람을 골병 들게 한다 해도, 그래도 그곳에는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늘과 땀을 식혀주는 바람, 그리고 무엇보다 수확에의 기대가 있다. 하지만 도시에는 숨 막히는 더위와 탁한 공기, 그리고 아스팔트의 열기나 있을 뿐이다.

“저기서 좀 쉬었다 가세.”

높다란 공장이 길가에 덕석만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아쉬운 대로 그 안에 앉는다.

우리 동네 사장나무에 견주면, 그늘이라고 있는 것이 참으로 옹색하고 짜잔하다. 널따란 마당 가운데 삼백 년인가 사백 년인가 서 있었다는, 어른 다섯은 팔을 벌려 잡아야 두를 수 있는 그 팽나무에 대면 말이다. 여름날이면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팽나무를 오르거나, 그 아래 있는 판판한 돌에 풀물로 판을 그려 곤을 두었고, 어른들은 정자에서 장기판을 벌이거나 둥그렇게 둘러 앉아 벽돌림으로 시조창을 했다. 팽나무는 낙하산처럼 가지를 펴 그늘을 드리워 주었고 가끔씩은 흘러가는 바람을 움키어 와 머리 위에 흩어 주기도 했다. 그 사장나무의 그늘 한 쪼가리나 바람 한 줄기만 있어도 도시의 아스팔트가 이리도 징상스럽지는 않을 듯싶다. 주전자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히는 이빨 시린 건넛샘물 한 대접만 있어도 도시의 이 뙤약볕쯤이야 볼을 스치는 선선한 건들마일 것만 같다.

“악아, 땀 닦어라.”

아낙이 쥐고 있던 손수건을 내민다.

“괜찮하요. 땀도 안 나구마는.”

이마로 목으로 땀이 줄줄대는데도 아낙의 손길을 피한다. 닦는다고 없어질 땡볕이 아니다. 아낙을 보내고 나면 어디선가 저절로 그늘이나 바람이나 샘물이 생겨나리라.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슬그머니 모자를 벗고 공중을 올려다본다. 희뿌연 허공에는 땡볕들의 알갱이들만 아글바글 아우성이다. 바람은 금오산 중턱 어디쯤에 허리띠를 풀고 앉아 내려올 생각을 않나 보다. 하기야 바람 저도 선선하고 한적한 곳에 있으려겠지 이 후텁지근하고 숨 막히는 곳에 오려지는 않을 것이다. 구름 한 점 바람 한 올 없는 고약스런 여름날이다. 분지의 공업단지에 뙤약볕까지 더해진 도시가 마치 펄펄 쇳물이 끓고 있는 주물 실습장만 같다.

손으로 땀을 훔치며 앞에 놓인 멸치 보퉁이를 내려다본다. 생긴 것은 전혀 다른데 이상하게 그것이 그 겨울의것을 떠올리게 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직 겨울방학이 시작 안된 초겨울, 산에는 잎을 지운 나무들이 앙상하니 떨고 가실 끝난 들판에는 검불들만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바다를 건너온 갯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면 오래된 나무 창틀이 늙은 개인 듯 덜컹덜컹 짖어댔다. 그 소리를 달랜다고 애들은 여러 번 접은 종이 쐐기를 창문 틈에 끼웠고, 그러자 바람은 벌어진 틈새로 스며들어 빡빡머리들의 목덜미를 문지르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르르 진저리를 쳤다.

선생님이 판서하는 사이 창밖으로 눈이 갔다. 저 위쪽에 사람의 모습이 아른대서였다. 아낙 셋이 소매동이를 이고 밭둑길을 걷고 있다. 변소를 푸는 모양이었다. 그런갑다, 하고 눈을 돌리려다 다시 쳐다보게 됐다. 무언가가 눈길을 당겨서였다. 소매동이를 인 채 줄줄이 걸어가는 세 사람 중에 끝에 있는 조그마한 아낙이 눈에 걸린다. 아무래도 그 아낙만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틀림없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 학교에 보낸 그 아낙이 맞다. 설마, 하며 다시 눈을 비빈다. 영락없다. 그 아낙이 지금 소매동이를 이고 학교 변소를 푸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한다. 저 아낙이 왜 저기 있는가. 저 아낙이 왜 저기에서 소매동이를 이고 변소를 푸고 있는가. 저렇게 해서 대체 몇 닢을 번다고 저런 일을 다 하고 있는가. 동네에서도 젤로 가난한 집 엄니들이나 하는 저런 천한 일을 말이다. 흘낏 올려다봤다가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동네 애들 누가 봐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쫑긋예처럼 입이 싼 녀석이 쉬는시간에 왜장이라도 치는 건 아닐까.

“와따메! 해진이네 엄니 변소 푼다네이!”

“해진이네 엄니가 소매동이를 이고 저기서 똥을 푸고 있다네이!”

눈은 칠판에 가 있지만 신경은 온통 창 너머로만 쏠린다. 아낙들이 안 보이면 마음이 놓였다가 보이면 다시 쿵덕대기를 반복한다. 아낙들이 빨리 일을 끝내고 가버렸으면 좋겠다. 변소를 안 퍼 변소 칸이 온통 똥으로 차버려도 좋으니, 그 위로는 누런 구더기가 는지럭거려 똥을 못 싸도 좋으니, 낑낑대고 참으며 학교에서는 아예 똥을 안 눠도 괜찮으니 당장에 저 아낙들이 가버렸으면 쓰겠다. 그래서 제발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

쉬는시간에도 밖에를 안 나갔다. 애들이 놀자고 끌어도 신경질을 내며 종일토록 교실에만 박혀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평소에는 서너 번은 가던 변소를 한 번도 안 갔다. 집에 와서도 학교에 다녀왔다는 말도 안했다. 저녁도 건너뛰었고,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는 뼛성을 내며 둑만 부렸다. 배고픈 줄도 모른 채 저수지 둑이며 학교 운동장이며 선창이며를 이슥한 시각까지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마치 통시 구덕에 빠진 것 같은 하루였다.

“그나저나 그 성님은 어쨌으끄나? 해나 겡찰한테 잽혀갔으까아?”

“참 깝깝한 소리 하요. 그런 일로 다 잡혀가것소?”

눈길은 허공에 둔 채 말만 툭 던진다.

“그 숙모도 숙모요. 다시 그 자리로 와야 같이 갈 것 아니요?”

슬쩍 돌아본 아낙의 눈길도 허공에 가 있다.

“금메 내 말이 그 말 아니냐. 암만해도 단대이 겁을 묵고는 딸네 집으로 핑 가벤 거 탁어야.”

아낙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친다.

“그러믄 어지께는 어디서 잤소?”

저 남쪽 끄트머리의 외딴 섬에서 올라온 아낙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망망대해 같은 도시의 밤을 어디서 보냈을까. 파도에 떠밀려 아무 구석에나 처박힌 뱅꼬처럼 도시의 어느 후미진 골목에 쪼그린 채 뜬눈으로 밤을 새운 건 아닐까.

“너 공부 못해서 어차끄나? 언능 가자.”

아낙이 자리를 털며 보퉁이를 인다.

“정류장까지만 데려다 주고 가믄 되네.”

아낙을 보내고 나면 청소시간쯤 될 것이다. 면회를 핑계삼아 느지감치 들어가면 된다.

“그래도 안그러께 싸게 가자.”

아낙이 걸음을 서두른다.

“해는 지제, 배는 고파 오제, 아는 사람은 없제, 오따, 몸살지칠 일이든마이.”

쉬는 숨결마다 말의 끝이 길게 늘어진다.

“역전에서 국밥은 한 그릇 사 묵었는데, 인자 잠잘 일이 걱정이어야. 이 일을 어채야 쓰끄나?”

정말 이 일을 어째야 쓸까.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아는 이도 아는 데도 하나 없는 그믐 같은 도시에서 아낙은 어찌 해야 했을까.

“멜치 폰 돈은 있제만, 대고 어디 들어가기도 그러고…, 어만 데 들어갔다가 또 먼 꼴을 당할지 몰르것고…, 그란다고 야밤에 차를 탈 수도 없고…, 해나 그 성님이 다시 올지도 몰르고…, 그래서 역에 들어가 한쪽 구석에 쪼글시고 있었니라.”

막슬리퍼에 땀이 차는지 걸을 때마다 찔복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쭈글세서, 자다 깨다 깨다 자다 보께 날이 희끗 새잖컷냐. 여름이라 밤이 짧으께 그나마 다행이드라만.”

찔꺽찔꺽.

“인자 차 타고 핑 집이 가야것다 맘 묵고 표를 끊으로 갔제. 어차피 성님도 안 오께 혼자서 갈 수밲이 없것든마.”

찔꺽대는 소리가 영 귀에 거슬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양말도 안 신은 아낙의 발뒤쭉지가 시꺼먼 홍합껍질이다.

고무신에 땀이 차 찔쩍거리면 우리들은 바닥에 지푸라기 몇 올이나 마른 풀 한 줌을 깔았다. 그러면 미끌대던 고무신 바닥이 운동화로 바뀌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본다. 지푸라기는새레간에 삶을 듯한 뙤약볕만 오살하다. 도시에서는 그런 하찮은 것도 찾기 힘들다.

“광주표를 끊을라다가야, 표 끊는 아가씨한테 여차꼴로…, 구미는 어추쿠 가냐고 물었제. 기차 타믄, 한…, 두 시간이믄 간다 안하냐.”

찔쩍찔쩍. 엿 궤짝을 등에 진 채 동네 고샅길을 돌던 깜빡수 엿장수의 짤깍짤깍 가윗소리만 같다.

“그 말 들으께 또 고민이 되든마이. 그냥 집이로 가끄나, 여기 온 김에 너나 한번 보고 가끄나 하고 말다.”

아낙이 살짝 걸음을 전주른다.

“그란데…, 꼴새가 말이 아니냐 안. 이 꼴로 어추쿠 학교를 찾어가까. 가므는 선생님도 찾아봬야 할 건데 이런 촌년 꼴로 괜침하까아? 그 생각에 또 한참을 문젰제.”

그런 입성으로 학교를 찾는 것이 에런 일이라고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그랬으면 여기로 오지 말고 바로 집으로 내려갔어야 했다. 서로 간에 이렇게 안 에럽도록 말이다.

“그러면 여기 일찍 왔겠는데 어째 이제야 왔는가?”

대전에서 구미는 넉넉잡아도 세 시간이니 아침나절에 이 도시에 도착했을 것이다. 역에서 학교 앞 버스정류장까지 삼십 분, 거기에서 학교까지는 기어서도 이십 분, 도저히 계산이 안 맞는다.

“역에 내리기는 했는데, 또 자신이 안 서는 거여. 진짜로 가끄나 마끄나 하고. 암만 그래도 학교로 아들을 찾어가는데 이 꼴로 가도 갠짐하까? 무담씨 찾어갔다가 아들 우사시키는 건 아니까? 거그다가 전에 느그아부지가 했던 말도 생각나고야. 그래서 자꾸 발뒤꿉지가 무거지드라께.”

아무리 섬에서 농사만 짓고 사는 무지렁이 아낙이어도 그 정도 중정은 있었겠지. 그건 알겠는데 뒷동으로 달린 건 뭐지? 아버지가 했던 말이라니? 그것이 갑자기 미늘이 되어 턱을 꿴다.

“아버지라우?”

아낙은 답이 없다. 그런 채로 서너 걸음이다.

“아버지가 뭐라 했는데라우?”

아낙을 돌아보며 재우친다.

“너 학교 데레다 주고 오든마는 밤낮으로 술만 묵어야.”

그러고는 또 서너 걸음이다. 얼른 말했으면 좋겠구만 자꾸 문치적대고 있다. 다시 아낙을 돌아본다. 아낙이 말을 잇는다.

“어채 그라요,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여러 날을 술로 살드라께. 그라께 나는, 생키 띤 에미맨치로 니를 거이다 띠 놓고 와 맘이 안좋아 그런지만 알었제.”

그러고 또 두어 숨을 쉬고는, “그란데 그거이 아니었든갑서야” 한다.

생전처음 섬을 떠나는 것이기도 했고 그곳이 ‘경상도’이기도 해서 아버지가 학교에 데려왔었다. 아버지는 이 도시에 아들을 떼어놓고는 외양간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갔고, 나는 젖을 뗀 송아지가 되어 여기 남았다. 낯선 곳이라, 더군다나 ‘경상도’라는 이름의 곳이라 많이 두렵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하는 게 모든 새끼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현실을 경경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소 어미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맨들었다께 이녁은 겁나게 존 학굔지 알었당마. 그런디 가서 보께로 이상하게 군인을 키우는 데 탁드라여. 너를 학교다 데레다 준 거이 아니라 군대다 넣고 오는 기분이드라냐 안. 안직 밍털도 안 빠진 어리디어린 너를 그 먼 겡상도에, 거이다가 군대 같은 학교에 놔두고 온 것에 그라고 맘이 애리드란다.”

아낙의 말이 담담 잦아지는 듯하다. 슬며시 돌아보니 아낙이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찍고 있다.

“느가부지가 옷이 없어 봄 잠바를 입고 갔었는데야, 추운지도 몰르고 역까장 걸었다든마.”

아낙의 말에 물기가 묻어난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아부지가 미안하다. 못난 아부지가 너를 여기다 띠놓고 가서 참말로 미안하다. 그라제만 헹펜이 이란데 어차것니. 이 수밲이 없는데 어찌 하것니. 그라께 너가 이해해라. 이라고밲이 할 수 없는 이 부모를 너가 이해해라. 그래도 아들아, 아무리 현실이 이래도 너는 잘 클 거이다. 잘 커야 쓴다. 그래야 쓴다, 아들아.”

그래놓고는 아낙은 말이 없다. ……. 너덧 걸음이다.

“그라고 집이 와서는 멫 날이고 술만 묵었는갑드라. 한…, 보름을 술로 살든만, 바로 원양 간다고 훌쩍 떠났니라.”

그랬구나. 그래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 급하게 다시 원양을 나갔구나. 분지의 겨울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이월의 끝자락에 얇디얇은 봄 잠바를 입은 그 사내는, 밍털도 안 빠진 새끼를 멀고도 낯선 고장에 떼어놓고는, 쇠지를 떼고는 나흘이고 닷새고 외양간을 돌며 울어대는 어미소처럼, 목은 쉬었는데도 새끼를 그리며 울고 또 우는 그 어미처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황량한 도시의 벌판을 걸었었구나. 그리고 애린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몇날며칠 술만 들이켜다가, 아프리카 저 어디, ‘라스팔마스’라 했던가, 그 먼 곳으로 감옥 같은 삼년의 원양을 떠났구나.

“그라께 느가부지처럼, 만내보고 괜시리 맘만 애릴까 무섭드라께. 차라리 안 만낸 것만 못하믄 어차끄나 싶어서 여러 번 문지고 앉았었네라.”

말이 더 이어질 듯 싶은데도 기척이 없다. 찔복대는 발소리만 귀에 든다. 어쩌면 아낙은 찔긋대는 슬리퍼 한 발짝마다 이국의 바다에 떠 있는 사내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아낙은, 직접 와서 보니 이녁 마음을 알겠다고, 그냥 갈 걸 괜히 와서 마음만 애리다고, 촌년이 무담씨 찾아와 아들 우세시킨 것 같다고 후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렇게 말은 닫은 채 산골짝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처럼 발소리만 찔복대고 있는갑다.

“그라다가야…, 여그까지 왔으께 보고 가야것다고 맘을 묵었제. 에럴 때 에럽고 애릴 때 애리드래도 보고 가는 것이 안 낫것냐고. 에미가 새끼 보는데 잔 추레하믄 어찬다냐고. 그라믄 에미가 새색시같이 채리고 새끼를 보리냐고. 아무리 해봐야 촌년이 촌년이제 어차것냐고. 그리 궁리함시로 찬채이 걸었니라.”

이왕 그렇게 마음먹은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걸었다’는 것이었다. 아낙이 그 길을 ‘걸어서’ 왔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들과 노량으로 해찰부리며 걸으면 시간반, 차가 끊긴 늦은 시각에 바삐 걸으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8월의 볕살이 불김으로 쪼여대는 이 한여름에, 머리에는 6킬로 되는 멸치 보따리를 인 채, 발을 뗄 때마다 찔복대는 막슬리퍼를 끌며 그 먼 거리를 허찐하찐 걸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면 늘려 잡아도 한 시간이면 넉넉한 거리를 거의 네 시간 넘게 땡볕 아래를 뙤똑거렸다는 것이다. 애당초 걷는 것밖에 모르는 섬사람이라지만 이건 무식함을 넘어 무모한 짓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걷다가 물어보고, 걷다가 물어보고, 목은 매란데 물 한 모금 못 얻어 묵고, 걸으고 또 걸었어야.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믄 얼마 안 남었단데 멀기는 징하게도 멀든마. 땡볕할차 난리께로 더 먼 것 탁해야. 그란지 알었으믄 뻐쓰를 탈 것인디야. 그랑께 촌것들은 어찰 수가 없는갑서.”

두 곱은 나시 되는 거리여도 외갓집 가는 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풀솜할머니가 호랑에 넣어주는 과자 몇 개와, 슬며시 쥐어주는 동전 몇 닢이 그 까닭의 전부는 아니었다. 발길에 구르는 신작로의 돌멩이들과, 저저금의 소리로 노래하는 새들, 나무와 잎들이 뿜어내 주는 풀꽃향기, 멀리 흘러가는 구름과 그것을 좆는 바람, 파도처럼 쓸리는 나락의 결, 그것들을 벗삼아 걷다 보면 함네집이 금세다. 시오리 길이 마치 이웃마을 같다. 그런데 아낙은, 새소리나 구름은새레간에 그늘 한 조각 바람 한 점 없어 금방이라도 머리가 벗어질 것 같은 땡볕 아래의 아스팔트를 오직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지뻑거린 것이다.

“아이가! 아이가! 그라께 멍청하믄 몸이 고생한다든가 안.”

하도 한심해 우박을 준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라께 펭생 이라고 살제 어차것냐.”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아낙은 그리 살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나저나 멸치는 다 팔아버리제 뭐한다고 남겼는가?”

머리에 이고 있는 두 지대의 멸치가 갈퀴나무 한 동처럼 무거워 보인다. 아까는 안그랬는데 홀쩨 그래 보인다.

“금메 말이다. 그 꼴 안 당했으믄 카칼히 털고 일어났을 것인디야, 일이 그랄라 그랬는가 어챘는가 이상하게 두 지대가 남었어야. 외려 잘됐다 싶든마.”

아낙의 말에 슬핏 맥이 돈다.

“선생님하고 느그 이모하고 한 지대씩 주믄 딱이것드라께.”

집에까지 돌아갈 일을 걱정해야 하는 판에 남 멸치 챙길 생각이 들었을까.

뒷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선다.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정류장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대구행 버스를 태우고 이모님께 전화만 하면 뙤약볕 아래의 이 지겨운 여름날은 끝이 난다.

“나는 얼른 가서 표 끊을라께 천천히 오게이.”

걸음을 잰다.

표를 끊고 바라보니 아낙이 사람들 사이를 허짓허짓 걸어오고 있다. 임이 표지가 되어 금방 눈에 띈다. 아낙은 지금까지 저렇게 머리에 임을 이고 살아왔지 싶다. 그때그때 이고 있는 것들은 달랐겠지만 내내 무언가를 머리에 얹고 있었고, 앞으로도 쌈북 저렇게 무언가를 인 채 살아갈 것이었다.

“이모한테 나오라고 전화할 테니 걱정 말게.”

아낙에게 표를 건넨다.

“그나저나 너 공부 빼묵어서 어차끄나?”

표를 쥔 채 아낙이 올려다본다.

“괜찮하요. 하루 안 깎는다고 쇠가 썩을 것이요 어쩔 것이요.”

눈길을 피하며 허공을 올려다본다.

“악아, 이거 을마 안된다마는 존조리 써래이.”

아낙이 곤말에서 접힌 지폐 한 줌을 꺼내더니 천원짜리 서너 장을 떼어 낸다. 그것을 쥐어주고도 아낙은 손을 안 놓는다.

“내 우래이…,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두 손을 잡은 채 아낙이 올려다본다.

“놈들은 부모 잘 만내 펜하게 공부한데, 내 새끼는 애비 에미 못만내 이 먼 데 와서 이 고생을 하네라. 애드러서 어차끄나, 애드러서 어차끄나.”

아낙의 눈귀로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그것을 안 보려고 높이로 눈을 올려버린다.

“몸 성해래이. 밥 잘 묵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낙이 손을 놓으며 손수건으로 코를 훔친다.

“언능 타게.”

멈칫대던 아낙이 멸치 보퉁이를 들고 차에 오른다.

휴, 끝났다. 드디어 뙤약볕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나만의 그늘로 돌아가자.

막 발길을 떼려는데 아낙이 보퉁이를 들고 버스에서 내린다.

“악아, 암만 생각해 봐도 안되것다. 이놈 한 지대 선생님 갖다 디레라. 하찮제만 그래도 정성이라고.”

아낙은 보따리를 들려주고는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지체한 시간을 벌충하려는 듯 버스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길을 재촉한다.

밀거니 버스를 쳐다보다 걸음을 옮긴다. 어느 결에 내려왔는지 산들바람이 뺨을 스쳐간다. 건넛샘물 한 대접을 들이켠 듯 속이 시원하다. 그늘 속을 걷는 듯 가뿐한 걸음이다. 그렇게 몇 걸음 걷는데 멸치 보따리가 들린 오른손이 영 어색하다. 여학생들이라도 지나가면 무슨 창피인가. 교복 차림으로 지겟짐을 졌다고 히히덕거리겠다. 선배라도 보면, 학교 위신 깎았다고 바로 몽둥이질을 할지 모른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깟것을 선생님께 드리기도 영 그렇다. 비싼것도 아니고 시장에 가면 실컷 널려 있는 이따위 멸치를 무슨 선생님을 갖다 드려야. 안되겠다, 버려야겠다.

길을 틀어 골목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보따리를 슬그머니 담벼락 아래 내려놓는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온다. 서너 발짝 떼는데, 느닷없이 아낙의 말이 빛살처럼 머리를 때린다.

‘내 우래이…,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애드러서 어차끄나, 애드러서 어차끄나.’

아낙은 천 원짜리 석 장을 쥐어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훌쩍였었다.

불쌍할 것도 애드러울 것도 없는데 아낙은 그렇다 했다. 꽁보리밥만 먹던 섬 소년이 쌀이 반이나 섞인 밥을 먹고, 제사나 명절이 아닌데도 소고기국을 먹는데. 교복과 낡아빠진 옷 한 벌이 전부이던 소년이, 교복에 군복에 실습복에 구두까지 가지게 됐는데. 그것도 전부 공짜로 지급받았는데. 실습시간에는 쇠토막이고 용접봉이고 납이고 간에 실습자재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돈 한 푼 안 내고 그러는데. 그런데 뭐가 불쌍하고 애드럽다는 걸까. 친구들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풀 때, 나는 기능사가 되기 위해 쇠를 깎고 납땜을 해야 하는 게 좀 그렇지만. 걔네들이 부모 밑에서 편안히 잠자리에 들 때, 우리들은 야간점호 후에 옥상이나 복도에 집합해 선배들에게 몽둥이질 당하는 게 좀 그렇지만. 친구들이 대학 가는 공부를 할 때, 우리들은 M1소충을 메고 군사학을 해야 하고, 그 친구들이 여름방학 때 바다로 산으로 놀러갈 때, 우리들은 군부대에 입소해 병영훈련을 받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꿈을 키울 때, 우리들은 오년을 하사관으로 복무하는 게 좀 무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과정을 전액 국비로 다니고 있으니, 밥에다 잠에다 옷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받고 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만큼의 혜택을 받았으니 졸업 후에는 당연히 그만큼을 갚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받았으면 응당 돌려줘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그런데 아낙은 대체 뭐가 미안하고 애드럽다는 걸까.

걸음이 멈춰지더니 두 손이 담벼락을 짚는다. 그러고는 두 팔 사이로 고개가 푹, 꺾어진다. 그냥 그래진다. 그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겨울의 풍경도 뜬금없다.

오줌이 아랫배를 가득 채운 새벽, 소년은 요강이 있는 토방으로 나갔다. 아직 지붕을 해이기 전인 동짓달의 마당은 둥글게 말아 묶은 마람들로 빼곡하다. 보름에서 며칠을 걸어 내린 하현달이 차갑게 빛을 뿌리고, 앞산의 소나무를 스쳐온 바람이 마람을 쓸고 간다. 사르락거리는 소리는 아까부터 거기에 섞였었다. 달빛과 마람과 바람, 그리고 사르락사르락. 마당은 하나의 풍경화로 겨울의 새벽을 흐르고 있다. 오줌 누는 것도 잊은 채 소년은 풍경 앞에 서 있다. 사르락사르락. 다시 쥐가 짚을 쓰는 듯한 소리가 달빛에 실린다. 소리의 사북자리를 찾으려 소년은 꼿발을 든다. 담과 행랑이 만나는 저 귀퉁이에 한 아낙이 쪼그려앉아 사르락을 만들고 있다. 남편은 배를 타고 이국의 바다를 떠돌 시각, 아낙은 새벽에 일어나 달빛을 불빛삼아 마람을 엮고 있는 것이다. 사르락사르락, 사르락사르락. 소매동이를 이고 학교의 변소를 펐던 그 아낙이다. 소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이 무릎을 탁 꺾었다. 사르락대는 소리였을까, 이울어가는 달빛이었을까. 아니면 그것들 다였을까. 달빛 머금은 바람 한 줄기가 소년을 쓸며 지나간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방으로 기어든다. 그리고 이불 속에 옹크린 채 흐득거린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임으로 얹힌 멸치 보퉁이와, 그것을 이고 땡볕의 아스팔트를 걷는 아낙과, 이월의 찬바람을 얇디얇은 봄 잠바로 걸었다가, 지금은 이국의 바다에 뱃사람으로 떠있는 사내와, 겨울의 달과, 그 새벽의 풍경이 머리 가득이다.

등에는 뙤약볕, 얼굴에는 아스팔트 불김이다.

한참을 울다 소년은 고개를 든다. 그리고 버렸던 보따리를 돌아본다.

보자기를 빠져나온 멸치들이 뙤약볕의 아스팔트를 가삐가삐 헤엄쳐 오고 있다.

 

정택진 작가는 청산도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표작으로는 ≪결≫, ≪악아≫ 등으로 이외수문학상, 대상창작기금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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