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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함박웃음 고향에 날려 보낸다

[에세이-그리움을 그리며] 최정주 독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09 10:17
  • 수정 2018.11.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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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의 까까머리 녀석들이 한양에서 조우(遭遇)했다
바르지 않아도 바른 것 같은, 덜 세련된 풋풋함이 자산이였고 보리 삶아 맵쌀과 섞어지은 양은 도시락밥도 보약처럼 먹고 모자랐었는데….  

이 친구들, 세월 지나니  제법 가리는 게 많아진다. 곡주 한잔도 가려서 소주파, 막걸리파, 무주(無酒)파에 물회도 안되고 회도 싫다고 하고 파전을 찾는가 하면 그나마 맥주 몇 모금도 브랜드 따져가며 낚아채 간다.

건강 보조제나 알약들을 가방에서 꺼내 이것저것 서로 권하고, 나이들이 많아진 증거들이지 않는가.

만나자 마자 반가운 마음을 술 몇 순배씩으로 대신하고,  청운동을 지나 윤동주 문학관에서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등 그의 족적을 돌아보고 시대적 위인의 아픈 과거를  공유하며 인왕산(仁王山)에 올랐다.

초반부터 세 부류로 나눠지는 체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듯 거친 숨소리에 땀방울들이 묻어 나와 세월의 무상함을 체감케 한다.

드디어 정상(頂上),
발아래 서울이  펼쳐져 있다.
제약받지 않는 무공해 공기를  쉼 없이 배부르게 하고 멋쩍은 포즈를 남발 한다.
젊은 청춘들의 전유물 같은 손가락 하트를 너도 나도 내밀고 한 포즈씩 잡아 함박 미소를 지어내는 이 철지난 친구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오늘은 해방됐음이던가 싶다.

그러나 잠시, 또 우리는 그 공허한 삶의 종심으로의 발걸음을 내리 딛기 시작했다. 하산 후, 서촌에 입성해  진한 곡주를 벗 삼아 그동안의 회포를 나누고 풀었다.
주거니 받거니 큰 웃음과 때론 목청을 돋아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고 현실을 질타하는 철든 중년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 친구가 사온  전통 떡 한개를 입에 물고 터키식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돋워 가는  나이든 중년 아이들이 돼 있었다.
청계천 변의 밤은 윤동주의 '별을 헤는밤’이 아닌 사람 숫자를 헤아려 보는 ‘청계천의 밤’으로 그 제목을 달리하라고 한다. 수많은 인파들 그리고, 형형색들의 설치물들에서 밤이 아닌 환한 낮으로의 귀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숙소로의 이동은 인왕산 끝자락 단군성전 정문 앞 숙소에 여정을 풀고 서울의 밤을 조금 더
나누고 싶어 서촌 시장을 훑어보나 주말의 시장은 썰렁하고 고향 완도의 부둣가보다도 정겹지 못해 편의점 앞 벤치에 막걸리,맥주,안주를 놓고 낮에 했던 얘기들 또 하고 또하고….
지난밤은 참으로 고약한 밤이였다.

세명이 동시에 연주하는 코골이 화음은 그날 하루로 끝나길 얼마나 다행인지.
많은 시간 함께한 친구들, 늘 그 자리에 이 가을과 함께 남아있었음 좋겠다.
가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녀석들의 함박웃음 소리를 고향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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