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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혼이 내 말을 들은 것 같았다[에세이-고향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완도신문 | 승인 2018.09.24 18:13


추석무렵이 되면, 내 가슴을 싸르르 쓸고가는 아버지. 팔 남매의 막둥이였던 나는 언니 오빠들은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하곤 했었다.

가난한 밥상에 굵은 소금을 발라 노릇하게 구워진 딱 돔 한 마리에게 감히 다가가지 못했던 언니 오빠들의 젓가락이 있었음을 그땐 몰랐었다. 철부지 나는 입맛 까다롭던 아버지가 즐겨드시던 음식만 골라 먹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하얀 쌀밥까지 나를 위해 남겨주셨다.

그 시절에는 여기저기에서 반공교육이 대단했었다. 어느날 간첩의 특징들을 학교에서 배웠는데, 직장이 없고 밤이 늦도록 라디오를 들으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산을 오른다는 등 우리 아버지랑 너무 비슷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혹시 간첩 아니라요?" "간첩이믄 얼릉 자수해서 광명 찾으시요"
아버지는 하두 기가 막혀서인지 허탈하게 웃기만 하셨다. 우리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어린 나에게 설명 해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선주였던 고깃배가 침몰하면서 어장사업은 망했고, 언니 오빠들은 학업들을 중단하고 뿔뿔히 흩어져 고달픈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 터 였었다. 그런 와중에 태어난 막내딸의 철 없이 엉뚱한 행동들은 근심에 쌓여있던 부모님을 마침내 웃게도, 당혹스럽게도 만들었다.

그게 몸에 배여서일까? 신기하게도 나는 문화가 전혀 다른 이곳 미국에서도 암으로 초췌해진 그들을 깔깔깔 웃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2018년, 올 해는 우리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딱 100세가 되는 뜻 깊은 해 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언니 오빠들이 전해 준 이야기들과 남아있는 사진 몇 장 뿐......, 부모님 결혼식 때 사진이며 의과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요즘 잘 나가는 젊은이들처럼 멋져보였다. 작은 오빠는 아버지가 의과대학을 마치고 의사로서의 삶을 사셨다면 훨씬 순탄한 인생을 사셨을텐데... 하며 아버지를 애도하기도 했었다.

엄마가 돌아 가시고 45킬로 남짓 깡마른 체구의 아부지가 살아 내려고 버팅기다 만난 유일한 탈출구는 술이었던 걸까?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엄마가 하던 잔소리를 대신 했고, 선술집에 찾아가 술 동무들에게 "울 아부지는 몸이 약하니 술은 절대로 권하지 말아주세요"  "아부지~ 가십시다" 하면, 허허 웃으시며 "내가 울 막둥이 땜에 살제 ~ 잉" 하시던 아버지셨다.

다른 형제들에게는 그렇게 완고하셨던 아버지가 왜 나에게만 그렇게 너그러우셨던 걸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어린 내가 부모없이 살아내야 할 어려움들을 아버지는 아시고 그저 안쓰러운 맘에 다 용납해 주셨던거 같다. 내 나이 열 아홉 살 추석 무렵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가셨다. 공부하겠다고 부산에 있던 내가 고향 집에 도착하니, 나의 죽마고우들이 우리집 부엌에서 서툰솜씨로 음식을 장만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위암 말기로 한 달 넘게 음식을 못 드시다가 피골이 상접한 채로 떠나 가셨다. 이미 마른 뼈처럼 앙상한 시신은 눈을 감겨 드려도 다시 뜨신다고 오빠는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무릎을 굻고 앉아 아버지께 약속했었다. "아부지! 씩씩하게 아주 씩씩하게 잘 살께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의 영혼이 내 말을 들은 거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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