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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 소확행(小確幸), 보약 한 첩, 드셨군요![소안면 특집] 1. 바다 낀 자연을 만끽하는 대봉산 둘레길
김형진 기자 | 승인 2018.09.09 13:50


머리 위 별들이 부드러이 살랑거리면 난 별들의 소리를 들었지, 8월의 멋진 저녁, 길가에 앉아 취하게 하는 술처럼 얼굴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느끼며...
 
19세에 붓을 꺾고 3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방랑자가 되어 끊임없이 길을 떠난 바람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 랭보.
인간은 철학자가 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던가!
철학자는 생각하는 사람. 내가 이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

그들은 그 무엇을 생각하기 위해 오늘 이 시간을 걸었다.
고통의 순간에 오로지 걷고 또 걸었던 니체나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우울증에 시달렸던 베토벤은 심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우산이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성곽의 큰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하지 않으면 새로운 영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소안도의 철학자 고영상 면장 또한 그들처럼 걷고 있었다. 지난 6월달에 본, 고 면장은 얼굴빛이 몹시도 어두웠는데, 이번 소안 특집판으로 방문했을 땐 그의 모습은 하얀 찔레꽃이 피워나듯 말끔해진 얼굴 빛이었다.

소안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서 잠시 차 한 잔을 나누니, 대봉산 둘레길에 대한 예찬이 이어졌다.
"거의 매일 어두컴컴한 새벽녘에 그 길을 걷는데, 그러고나면 하루가 너무나 좋습니다"
"그냥 가시지 말고, 꼭 한 번 걷고 가기를 바랍니다"며 적극 추천. 
그런데 바깥 날씨 섭씨 34도.
이 뜨거운 햇살 아래,  1시간 30분을 걸으라고? 죽일 참이구만!
그 생각도 잠시, 그래 어디 철학자가 한 번 돼 볼까!
 

대봉산(大鳳山).
한마디로 큰 봉황의 산이란 말인데, 봉황은 조류의 으뜸이고 여기서 봉은 수컷을 뜻한다.
옛말에 이르길, 산이 명산인 것은 그 높음이 아닌 신령한 정령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며, 물이 영험한 건 깊음이 아니라 그 안에 용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봉황은 절개가 굳고 품위를 지키는 새. 그래서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를 않고 굶주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 영물 중에 영물.

이 산의 명칭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험하고 신령한 것만은 분명하다. 독립유공자 19명과 애국지사 57명을 배출해 함경도 북청, 경상도 동래와 함께 세 손가락에 꼽히는 항일 운동의 3대 성지. 항일 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동학혁명 때엔 동학군들이 소안도에 들어와 훈련을 했고, 1894년 12월엔 동학의 지도자 이강욱 나민홍 이순칙 등 7명이 이 섬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이곳 출신이면서 완도의 정신으로 추앙받는 송내호 정남국 선생은 3월 15일 완도읍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는데, 이는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장터 만세시위(4월 1일)보다도 보름이나 빨랐다.
 


의기로운 인령과 대봉의 정령, 그리고 창랑의 푸른 파도가 극적으로 어우러져 아득한 고요를 빚어 놓은 대봉산 둘레길.
천지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그 작용은 쉬지 않고, 해와 달은 밤낮으로 분주하게 움직여도 그 밝음은 만고에 변하지 않으니 소안의 의기와 정신이 그러하다.
여기에 파도소리와 새소리, 노랑나비의 펄럭임까지 정말, 고요했고 아름다웠으며 눈부셨다.
둘레길은 푹신푹신한 스폰지 위를 걷는 느낌으로 완만한 숲길과 해안 경관을 볼 수 있어 가족 또는 연인이 함께 걸으면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다.

걷는 즐거움이란 게 이러하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내 안에 묻힌 의미들을 발굴하는 쾌감이 있고, 그 낯선 의미들이 충돌할 때 번쩍거리는 섬광처럼 돋아나는 상쾌함이 있고, 매복한 개념들이 내 마음의 스크린 속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장면을 영화처럼 감상하는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다.  그래서 숲이란, 내 삶의 행간을 들여다 보면서, 내가 숲을 그리고 숲이 나를 그려보는 교감의 지평으로써 만물과 공감의 물결이 빚어내는 텅 빈 충만같은 것.
그런 무아지경 끝에 산길을 돌아오면 가슴은 어떠했을까?

짧은 시간에 감행하는 일상으로부터의 거대한 일탈, 이 소소한 행위가 불러오는 결코 소소하지 않은 깨달음!
이것을 요즘 뜨고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안의 소확행(小確幸)이라 명명하고 싶다.
 

둘레길 코스는 숲속에서 해안절경을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는 완만한 지형이며, 장비와 인공구조물을 일체 배제한 채 전 공정을 사람의 손으로 주위에 있는 흙과 돌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다고.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둘레길 끝자락(북암리 구간)으로 가면 구실잣밤나무 군락지와 대나무 숲을 통하게 되어 있어 걸으면서 일상생활의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그대로 머무르고 싶은 마음까지도...
그렇게 다 돌고 왔더니, 면직원들의 말.
"보약 한 첩, 제대로 드시고 오셨군요"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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