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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의 발자국 안에는 무수한 사연이 얽혀 있다

[에세이-詩를 말하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9.08 19:47
  • 수정 2018.09.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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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주었네

    -김명수, <발자국> 전문

한여름이면 대체로 계곡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는다. 해수욕장은 바람과 모래와 바다가 하나이고, 왠지 모를 낭만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 역시 며칠 전 조약도 가사리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바다는 모성애를 소유하고 있었고, 백사장에는 동심이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와 내려놓기도 했다. 동백나무와 측백나무는 그늘을 내어주었고 허술한 평상들은 피서객의 이야기들을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다.

평상에서 바라본 바다와 백사장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향 사람들과 나그네들을 실고 떠난 여객선은 생생하게 바다에다 백파를 그려주며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이 꼭 고향을 옆에 끼고 가는 듯하다.

해수욕장 피서객들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손뼉을 치고 손도 흔들어댄다. 바다와 여객선이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사납게 밀려오는 백파는 무수하게 찍힌 발자국을 하나하나 지워내고 때로는 무더기로 지워가다 꼭 하나의 발자국만 남겨놓는다. 그 발자국은 피서객의 발자국일 수도, 짐승의 발자국일 수도, 새의 발자국일 수도 아니면 파도 자신의 발자국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다 지워내고 저 발자국 하나의 흔적만 남겨둔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파도가 그 비밀한 사연 하나쯤은 그 흔적 속에 묻어 두고 싶어서인지 모를 일이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을 그 어떤 것을 파도는 숨겨주고 싶었을까.

인간은 특히 비밀을 소유한 채 살아간다. 비밀을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투명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승도 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을 분명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 저 발자국이 어느 발자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파도는 결국 그 발자국마저 지워버리고 만다. 어쩌면 파도 자신의 발자국이어서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백사장의 사람들은 수많은 추억을 쌓고 있다. 어떤 연인들은 자화상을 큼지막하게 그려놓고 그 밑에 이름자를 적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하며 또렷하게 새겨 넣기도 한다. 중년부부는 모래 속으로 온몸 다 숨기고 고개만 내밀고 있다. 백사장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시인은 지워져버린 그 발자국 흔적을 찾기 위해 백사장 여기저기 찾아 헤매었지만 그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채 서성인다. 바다가 품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다는 언제나 어머니의 품이기에 이 세상 모든 것들, 이기적인 것, 합리적인 것, 품을 수 없는 인간의 욕심까지 다 품고 있다. 바다는 곧 사랑이시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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