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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우리들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기위함"[이 사람]완도변환소와 송전철탑 반대를 위한 범군민대책위원회 이주열 위원장
박주성 기자 | 승인 2018.03.30 13:13


“어머님이 4·19 혁명이 일어날 당시 완도 군외면 은선동의 산골 처녀였는데, 당시에 그 산골까지 ‘장하도다~ 김주열~’이라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내어머니는 ‘김주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주검이 되어 올라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된 민주열사인지도 모른 채, 노래가사가 너무 좋아 내가 아들을 낳으면 꼭 ‘주열’이라 짓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남자 아이가 태어나 ‘이주열’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누군가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가른다’고 했다. 여기 또 한사람 그 말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이름 자체가 ‘의인(義人)’의 것에서 따온 것이라 그런지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을, 고향으로 내려와선 지역운동과 농·어민운동 등을 해오다 지금은 ‘완도변환소와 송전철탑 반대를 위한’ 범군민대책위원회(이하 범군민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이주열 씨(52)다.

“제가 타고난 기운이 이름 때문에 그런지 열사, 의사 이런 기운이 있나 봐요.(웃음) 어머니가 학력이 당시 초등학교 졸업이라 무슨 세상 물정을 아셨겠어요? 사람이 이름대로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지역사회 선·후배들도 이런 얘기를 알고는 제 별명을 ‘이열사’라고 해요” 

이름값 때문인지 이번에 범군민대책위 준비위원장을 맡을 때 그는 “청정바다라는 완도에 더군다나 완도읍에 진입하는 길목에 저 흉물스러운 송전탑이 세워지고 전자파를 발생시키면 누가 여기를 찾아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목탁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맡게 됐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학 다닐 때 정권의 블랙리스트 오를 정도로 학생운동을 굉장히 격렬하게 했던 사람이다. 그때가 조선대 ‘민주조선’ 교지편집장 이철규 군의 변사체가 떠올랐던 80년대 후반으로, 정보기관에서 조선대에 관계된 진보된 인사들을 간첩으로 엮으려 했던 무렵이다.

“이철규 열사 간첩단 사건이 내가 졸업한 후에도 마무리가 안돼 군대 입대를 한 순간 기무사에서 죽도록 두들겨 맞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만큼 잔혹한 가혹행위를 당해야만 할 처지였어요.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고문을 이겨내겠어요. 그래서 손가락 단지(斷指)까지 하고...” 

이 대목에서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였다. “난 자식이 아니라 웬수였어!” 부모님이 물려준 신체를 훼손하는 것도 불효인데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실망하신 어머니가 못마시는 술을 드시다 몇 년후 치매가 시작돼 15년이나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금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혼자 눈물만 난다고.

“난, 내 속에 가장 깊게 뿌리 내린 건 어머니의 눈물이다.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꿈을 일으키는 파도 속에 억척스레 바다를 끌어안고 살다가 바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속울임이 내 심장 속에 고여 있다”

“어릴 적 회초리를 들때마다 차마 종아리를 때리지는 못하고 날 노려보시며 글썽이던 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울면서 어머니를 와락 끌어 안으며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었고, 어머니는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힘찬 포옹을 해 주었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하염없이 흩뿌리는 그의 말의 혼에서 그의 인생은 이름이 결정한 게 아니라 어머니의 한없는 정성이란 걸 알게 됐다. 모든 어머니가 한없이 자기자식에게 보내는 ‘사랑’ 바로 그것.

고향에 내려와 뜻대로 되는 건 많지 않았지만 그의 심지(心地)는 변함이 없다.
“피끊는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것, 고향 완도로 돌아와 선배들과 어민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관계 정보기관으로부터 주요 사찰분자로 찍혔지만 당당히 사회운동을 하였던 것, 이 땅에서 정치를 하고자 했던 건 모두 우리들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함이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가 깨달은 바도 컸다고 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1인의 만보 전진보다는 만인의 1보 전진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그는 부모님에게 가슴에 뺏지를 달아 드리는 게 소원이다. 불효를 갚을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군민대책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출마는 이 투쟁이 온전히 끝나면 하겠다”고 잠시 내려놓은 상태다.

“이번 완도송전탑과 변환소가 세워지게 된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군민들이 다 죽어가게 생겼는데 여기에서 무슨 출마를 이야기 하겠는가 ”

“아직 제 자신이 많은 부분이 부족하기에 부단히 용맹정진 민중과 함께 살을 부비벼 배워가며 살아가다 보면 꽃이 피는 날이 있겠죠?“         

그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희망 꽃은 누구의 가슴에도 피어난다는 확신을 갖는다.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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