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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반짝반짝 별들처럼 나를 깨워가고

배민서/완도출신 미국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02 13:01
  • 수정 2016.12.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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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ired"
나는 하얀시트를 잡아당겨 그녀의 목덜미와 얼굴, 그리고 머리까지 완전히 덮어야만 했다. 며칠 전까지 웃고, 울던, 그리고 빅허그를 나누던 그 따스했던 온기가 서서히 내 환자의 몸에서 소리없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언니들과 나는 아랫목에 누우신 엄마 곁에서 텔레비젼을 보고있었다. 엄마의 거친 숨소리가 잠잠해지자 엄마의 코에 귀를 대 보았고 손을 만져 보았었다. 아직 따스한 엄마의 온기가 느껴져 편안하게 주무신다고 믿었다. 잠시 후 외출하셨던 아버지가 황급히 들어오셨다. "느그엄마 오짜냐? 괜찮냐~?"

"여보! 이보게!"  하며 어깨를 흔드시고, 맥을 짚으시던 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채 "느그엄마 갔다."하시며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으셨다.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살아오면서 고스란히 느껴며 견뎌야만 했었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라 병원에 휴가를 신청하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우리 집에 김치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22년 미국생활 동안 김치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또 있었을까? 그리고 김치로 만들수 있는 다양한 요리들과 효능들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한국마켓이 있는 달라스까지 가기엔 너무 멀어, 베트남 그로서리에서 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구고 찹쌀풀을 쑤어 김치양념을 만들었다.

"아마도 이맘때쯤 이었을거야!"
엄마가 말기 암으로 사경을 헤매실 무렵, 여고생이던 언니와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김장김치 헤프닝이 생각났다.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들을 동원하여 배추도 절였고 무우채를 썰어 빨갛게 양념도 만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언니랑 골고루 양념을 버무려 장독에 담고 켜켜히 소금도 뿌리고 엄마가 하시던대로 김장을 담궜다. 그런데 얼마나 짜게 만들었던지 이듬 해 여름까지 기다려 맛을 보아도, 너무 짜 먹을 수가 없었다. 맛있어 보이던 빛깔 좋은 묵은지를 할수없이 물에 씻고 우려내어 볶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면, 죄로 인해 형벌을 받은 시지프는 무거운 바위를 쉬지않고 산꼭대기로 밀어올리고, 떨어지면 또 다시 밀어올리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카뮈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환희로운 빛을 찾고, 행복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깨달음은 나에게도 환희로웠다.

저주받은 듯한 우주가 그에게는 더 이상 불모의 땅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돌의 부스러기 하나 하나가, 어둠 가득한 산의 광물적인 광채 하나 하나가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어 그에게 다가왔었다. 돌을 밀어 산의 정상을 오르는 그 자체가 이제는 그를 충만하게 만드는 환희로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 내가 하는 일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 어떤 상황에도 그 속에서 가장 반짝이는 희열을 찾아 나를 발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잃고 아주 쓸쓸했던 밤, 나는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오랜세월이 흘러 뒤돌아 보니, 나는 나의 일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반짝반짝 별들처럼 나를 깨워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기적이었다.
 오직 아픈 고뇌로 인해 깨어나고, 깊은 통찰들은 삶 속에 감추인 환희들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나의 밤 하늘에 하나 씩, 둘 씩 별들을 새겨넣어  반짝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였다. 더 이상 아픔은 슬픔의 잔재가 아닌, 더 넓은 가슴으로 사랑하고, 마지막 침상을 따스하게 밝혀주는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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