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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입술에 행복, 바로 그걸 입맞춘다

나의 반쪽

  • 이세민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1.25 11:08
  • 수정 2016.11.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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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어머니를 모시고 완도지역자활센터를 찾았다.
그 당시 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자활사업이 무엇인지도,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하였고, 단지 어머니가 자활사업에 참여하고자 기초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을 모셔다 드리려는 목적뿐이었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어려운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시키는 일이 웬지 보람이 있겠다 싶었고, 자활사업을 접하다보니 나의 자성이 점점 그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복지사의 길이 어느덧 10년 째.

이곳에서 처음 맡았던 일은 집수리 참여자였다. 컴퓨터를 조금 만져봤기에 간단한 서류 정리 부터 현장에 자재가 부족하면 자재 배달, 현장 잡부 등의 일이었다.
급하게 귀향 한 터라 잠시만 일 하면서 개인사업을 준비하자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우연히 다음해 신규 사업 전담 관리자 자리를 제안받았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참여하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처리하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이벤트들이 생기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다 보니 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에 진학, 복지사 자격을 취득하여 센터 정직원이 되었다.

그렇게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역시나 나의 영원한 반쪽을 만난 일이 아니었을까! 아내를 처음 본 건 서른이 되기 몇 해 전, 오랫만에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자리에서였다.
그때 같은 동문으로 그 자리에서 함께한 아내.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에 막내 동생 쯤으로 보았지만, 사람 일이란 참 묘한 게 보면 볼수록 정든다는 말. 바로 아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10월의 어느 멋진날처럼 우리의 첫데이트는 이뤄졌다. 어떻게 마음이 맞았는지 아내와 난 광주에서 영화를 함께 보게 되었는데 당시 기분이 참 묘했다. 함께 즐거워하고 같은 공간, 바로 옆에만 있어도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묘한 동질감이랄까!
마음 속으로 한발짝 두발짝 걸어 들어오는 아내. 완도로 오는 길에 나눴던 수많은 말들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빛났고, 밤바람에 실려오는 그녀의 향기로움이 밤하늘을 온통 채우는 듯 했다.

3년간의 열애. 연애 기간동안 몇 번 헤어질 뻔했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따지고보면 모두 내 잘못이었는데, 가끔씩 친구들과 술자리에 있곤 했을 때, 아내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럴 때면 일체의 연락을 끊고 우리 사이는 곧바로 냉전기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달래고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결혼에 성공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두 딸도 태어났다.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자활센터가 나에게 그랬듯 아내 또한 내 삶의 베이스켐프가 아닌가 싶다.
인생이란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산행을 위해 준비하고, 적응훈련을 하여 정상은 아니지만 내일을 꿈꾸며 한 발 한발 나아 갈 수 있게 해준 베이스켐프같은 사람!


가끔은 무력감과 열등감으로 지쳐있는 날 위해 아내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름답게 세워놓은 힘을 가진 것 같다. 그토록 오랫동안 한결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나의 어두운 뒷모습이 되어 말없이 감당해 주는 아내.
한 줄기 맑고 투명한 빛을 던져주는 아내는 그래서 위대하게 느껴진다.


여보! 생각해보니 당신으로 인해 나는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사랑의 이름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지금 당신의 입술에 행복 바로 그걸 입맞추렵니다.
이세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