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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민방위 나침반’서경임 이남임 시인

뉴스 후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0.28 10:07
  • 수정 2016.10.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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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대한민국 문해의 달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완도평생교육원 제일한글학교 2명의 학습자가 출품해 수상했다”
지난 9월 30일 본지 제1053호에 실린 기사 내용의 앞부분이다. 당시 수상자들의 시가 인터넷 신문에서 꾸준히 읽히면서 뜨거운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전남평생교육원 진흥원장상을 수상한 이남임 씨의 <나침반>은
‘내가 한글을 모를 때에는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내가 한글을 배우고 나니 신지에서/ 서울 강남터미널도 가고 지하철 3호선 타고/ 2호선 갈아타고 암사동 시장에서 내려/ 우리 아들 살고 있는 유원 아파트도 찾아/ 갈 수 있게 되었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네(전문)’.
 

한 글자도 빼거나 더할 것 없는 시다. 이 짧은 시 한 편에 담긴 그의 삶의 궤적이 눈에 선하다. 간판의 글자도 이정표도 읽을 수 없어 남편 뒤만 졸졸 따라다녔던 숱한 길들, 사랑하는 아들의 집도 혼자서는 찾아나설 수 없었던 무력감, 자신의 삶도 늘 누군가의 뒤만 따라다녀야 할 것 같은 비애감……. 그러니 어느 순간 눈이 환해지는 세상을 만나고는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는 것일 게다.

한 독자는 “한 행 한 행, 한 자 한 자 다시 읽게 되고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런 기교 없이 시가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해왔다.

전국 우수상을 수상한 서경임 씨의 <민방위>는
‘50년 살았던 나의 집/ 서방과 자식 키움서 지지고 볶음서/ 살았던 나의 집/ 대문 옆에 붙어 있던 저것!/ 그냥 모르는 것!/어느 날 갑자기 보인 저것!/ 민! 방! 위!/ 몇 십년 그 자리에 있던 저것!/ 민방위라는 글자였다/ 민방위 저것은 나한테 얼마나/ 욕했으까잉/ 민방위야 미안하다…/ 이제사 알아봐서…(전문)’.
 

50년을 살았던 집 대문 옆에 붙어 있었지만 역시 읽을 수 없었던 글자가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왔을 때의 감정이 잘 느껴지는 시다.
‘민방위야 미안하다’ 했지만 실은 글자를 몰라 한없이 답답하고 서글프기도 했던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과 대견함은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자식들 먹이고 가르쳐야 해서 당신 몸도 마음도 돌볼 틈 없이 무한한 희생의 시간들을 살아왔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러나 자식은 어머니 살아 생전엔 평생 알아듣지 못할 바로 우리들 어머니의 목소리를 바로 곁에서 듣는 듯하다.

지난 19일 수요일 오전 제일한글학교에서 수업 중인 그들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나침반>으로 수상했던 이남임 씨는 “우리 선생님이 쓰랑께 써얀디 뭘 쓴다냐 허다다 썼제. 암껏도 몰랐제”라고 수상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한글학교에 다니게 된 계기는 교회에 다니던 시이모님의 권유. 한글도 가르치고 요가도 가르친다고 여러 번 권했으나 번번이 “그람 바쁜께 담에 데꼬 가씨요!”하며 미루고 미루다 어느덧 10년 넘게 다니고 있다. 10년을 다녔으면 박사도 됐을 법 하지만 “없는 시골서 먹고 사느라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험서 한 글자나 훔쳐 담지, 몰라 암껏도 몰라…” 시가 참 좋다, 감동 받았다는 독자들이 많다 전하자 쑥스럽게 웃는다.

서경임 씨는 올해로 4년째 한글학교를 다니고 있다. 역시 뒤늦게 배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왔다 가면 도로 잊어부러. 두어 시간 공부허고 집에 가서 일하면 또 잊어불고”. 실력이 느는지 어쩌는지 가늠할 겨를 없이 일하고 살림하고 공부하고 또 살림하고 일하고… 그는 한 시간에 6천원 벌이 톳을 줄에 꿰는 일을 종종 하는데 이제는 다리가 아파 일도 점점 버겁다.

제일한글학교에서는 문자해득교육프로그램 이수를 통해 초등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 서경임, 이남임 씨의 졸업식이 기다려진다. 아울러 두 시인의 다음 시편이 무척 궁금하다.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진솔하고 순박한 표현으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울리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시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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