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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晩秋

기억… 혹은 기억한다는 것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0.28 08:46
  • 수정 2016.10.2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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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향교에서 바라본 상황봉

시월이 깊다. 가을이 깊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다. 들판도 익고 감나무도 사과나무도 익은 지 오래. 잘 익힌 것들 다 내주었다. 빈 손으로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쓸쓸함도 깊다.
남는 것은 기억, 혹은 기억한다는 것…….

기억한다는 건 한편 아픔이다.
경찰의 말과 달리 살수차에서 쏟아지는 물살에 강화 유리도 벽돌 무더기도 못 견디고 산산조각 나버리는 한 TV 프로그램의 실험 영상을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은 아프다. 상상을 불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취임 이후 처음 고개 숙인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선거 때면 유권자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할 것처럼 떠들어대다가 정치 공학 운운하며 민생은 팽개치는 정치인들에 대한 기억은 면역력이 생길 지경이다. 그렇지만 더 아프지 않으려면, 더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똑똑히 기억해야 하는 것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아프기만 해서 쓰겠는가. 하여, 빈 자리에 새로 피어나는 것들도 있다. 억새, 갈대, 구절초, 그리고 간혹은 철 지난 줄도 모르고 피워대는 꽃들……. 아프고 고통스러운 날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 지금도 꺼내보면 구절초 하얀 꽃잎처럼 환해질 기억 하나쯤 우리 마음 속 분명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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