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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청산이라면

세상을 만드는 손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9.30 11:42
  • 수정 2016.09.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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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청산 가던 날은 때 아닌 더위가 기승이었다. 낼모레면 10월인데 전국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더웠다. 정오 무렵 일찌감치 점심을 잡순 어르신들이 청산항 근처 쉼터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딱 봐도 과묵할 것 같지만 묻는 말에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김재석 씨(사진 왼쪽)와 묻기도 전에 따르르 말해주고 빨리 또 물어보라는 박승록 씨(사진 오른쪽).

둘 다 청산이 고향. 한 살이 많은 재석 씨는 열아홉 살에 혼자 상경했다. 그때가 1969년. 화학제품을 만드는 사촌형 밑에서 일하며 서울살이 10년. 빛나는 청춘을 쏟아부으며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숱한 설움과 쓰림들을 이겨내고 어렵게 적응할 즈음 돌연 귀향을 하게 되었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그대로 둘 수 없어 모시기로 결심하고 내려왔다는데.

그렇게 고향 청산에 내려와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낳고 40여년을 건설업에 종사하며 살았다. “돈 많이 벌었어. 아주 유명헌 사람이여!”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박승록 씨. 이제는 어머니도 아내도 옆에 없다는 재석 씨는 그저 무덤덤하다. 겉보기엔 건강해 보여도 암 수술도 두 번이나 받고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늘 조심스럽다. 지금은 작은 낚싯배 하나 사서 낚시하는 재미로 산단다.

재석 씨보다 한 살이 적다는 승록 씨는 재석 씨랑 어디 갈 데가 있는지 바쁘다. 묻지도 않았는데 청산이 고향이다, 부산에서 28년 살았다, 가구공 하다가 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3년 갔다 왔다, 이제 20년째 부부가 여기서 살고 있다, 줄줄줄 읊어주고는 재석 씨를 재촉한다.

갈 듯 갈 듯 하다가 한 마디 이어주고 또 재촉하고 또 한 마디 이어가는 승록 씨. 장난꾸러기 막둥이가 형을 졸라대는 모습 같았다. 66세, 67세면 요즘 나이로 청춘이라지만 깨복쟁이 동무와 함께 하는 일상이라면, 그것도 이토록 아름다운 청산에서 보내는 나날이라면 70대, 80대엔들 청춘 아닐 까닭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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