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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항쟁 체험학습을 다녀와서

송재원(완도고 2학년)

  • 송재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5.26 15:23
  • 수정 2016.05.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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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월 21일 학교에서 역사탐방을 가게 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5.18 민주항쟁이나 일제강점기와 같은 역사들을 듣거나 공부하면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왜 시민들에게 그래야 했을까?’ 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이 의문은 분노를 갖더라도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어떻게 끝이 났는지 이러한 구체적인 것들을 알고 분노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는 당일 날 처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서 내가 가는 이유를 잊어버리고 논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광주에 거의 도착해서 우리학교 김남철 역사 선생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실 때부터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구체적인 설명에 ‘아, 오늘은 정말 민주항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망월동 묘역에 도착했고, 저 멀리까지 보이는 묘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그 곳에는 주먹밥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왜 나눠 주는지 의미를 생각하면서 먹으니 당시 상황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것을 먹은 이후 우리는 묘역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설명을 들었다. 사실 나는 그 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 중 중요하지 않은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신 업적이 크든 작든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발이 이끌리는 대로 다니며 한 분 한 분의 업적을 읽었다. 그 중 가작 기억나는 분은 성이 표 씨였는데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분은 나라를 위해 일하시다가 경찰들에게 당하여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버티고 계셨다는데 또 경찰들이 호흡기를 강제로 떼고 화장을 시켜서 금강 어딘가에 뼛가루를 뿌렸다고 한다. 이것을 읽은 나는 정말 뼈저리게 마음이 아팠다. 유가족들은 얼마나 더 슬펐을까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많은 생각들을 하며 그 곳을 지나 5.18 민주 항쟁 중 희생을 당하신 분들을 모신 곳으로 이동했다. 묵념을 하고 뒤의 묘지들을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곳의 설명을 듣고 그 분들의 얼굴들을 보니 더욱더 그러했다. 그 곳에 가이드로 오신 형이 딱 한분만 설명해주신다고 하여 들었는데,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의 친한 친구 분이라 하였다. 함께 선생님을 하자고 했는데 그 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것을 듣고 우리 주변에도 둘러보면 가까운 곳에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곳을 떠나서 금남로에 있는 5.18 기록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어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잠깐 그곳의 전시물들을 관람했다. 설명을 10분 정도 못 들어서 매우 아쉬웠지만 전시물들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 곳에는 피로 물든 태극기, 시민들을 향해 쐈던 총알, 멈추어 버린 시계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멈추어 버린 시계였다. 그때에는 태엽을 감아서 시계를 작동했는데, 주인이 희생을 당하셔서 시계가 5.18에 멈추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 제일 많이 와 닿았다.

오늘 하루는 정말 내가 알던 5 18에서 좀 더 구체적인 5 18이 되었다. 그리고 또 먹먹하고 뭉클해지는 하루였다. 집에 가니 아빠가 만약에 네가 학교에서 안 갔으면 동생을 데리고 함께 갔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도 나중에 자식을 낳게 되면 꼭 데리고 가서 내가 직접 설명해 주리라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