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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후예들과 함께한 항일운동 역사 체험

우리 지역의 자랑찬 항일운동 역사 배우고 위상 느껴

  • 위대한 기자 zunjo@naver.com
  • 입력 2015.08.19 14:30
  • 수정 2015.12.1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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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기념>
'캠프 동행 밀착 취재'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거리마다 태극기가 걸리고 이곳저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우리 지역 청소년 단체인 장보고아카데미에서도 항일운동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그 위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30명의 청소년들과 1박 2일의 일정으로 제주 3대 항일운동 성지를 방문했다.

“항일운동의 성지를 향해 출발!” 힘찬 구호를 외치며 완도여객선터미널을 출발한지 두 시간 만에 제주항일기념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제주 3대 항일운동이었던 법정사 항일운동과 조천만세운동 그리고 해녀항일운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김정희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들었다.

항일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청소년들은 기념관 내에 전시된 일제 침탈의 기록을 살펴보며 국권피탈의 슬픔과 분노를 느끼기라도 한 듯 전시된 자료들을 기록하는 학생도 있었다.

기념관 바로 앞에는 조천리 미밋동산이 있다. 조천만세동산이라고 부른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던 김장환이 고향인 조천으로 내려와 조천리, 신촌리, 함덕리 주민 500여명과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만세를 외쳤던 곳이다. 네 번에 걸쳐 만세운동을 펼쳤던 조천만세운동은 제주지역에서 전개된 다양한 민족해방운동의 모태가 되어 제주도민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만세를 부르는 조각상과 야외추모탑이 그날의 함성을 느끼게 했다.

독립운동유공자비와 애군선열 추모탑 앞에서는 지도교사와 참가한 학생들 모두가 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다음 목적지 제주해녀기념관을 방문해 해녀항일운동과 해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해녀항일운동은 전국 최대 규모의 최초 여성 집단의 항일운동이자 어민 운동으로 일명 ‘좀녀’(해녀의 제주도 방언)들의 봉기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수탈에 대항해 제주 해녀 수천 명이 전복 채취할 때 사용하는 쇠갈고리인 비창을 들고 싸웠다. 1930년대 일어났던 최대 규모의 항쟁으로 1932년 약 3개월에 걸쳐 연인원 17000여명이 궐기했다. 제주해녀항일기념탑 옆에는 해녀항일운동으로 옥살이를 한 강관순이 지은 ‘해녀노래’라는 시비가 보였다.

항일운동성지 두 곳을 방문하고 약천사에 짐을 푼 청소년들은 배철지 전 완도문화원 부원장과 함께 완도항일운동사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1920년 송내호 회장과 정남국 부회장 등 100여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항일투쟁을 한 소안배달청년회와 살자회 사건, 이준화 외 5명의 당사도 등대 습격 사건과 소안면 토지계쟁 사건, 소안면에 항일비밀결사체인 수위위친계, 고금학교 의거, 장석천 선생을 비롯해 완도사람 9명이 연루됐던 광주학생운동, 전남운동협의회 사건과 약산협의회 사건, 임재갑 선생의 무장투쟁 등 일제 강점기 완도에서 일어났던 항일운동사와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활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다음날 일찍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를 방문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 5개월 전인 1918년 10월 7일에 법정사 승려들을 중심으로 서귀포시 주민 700여명이 참여한 제주도 최초 무장 항일운동이다. 모든 일행들은 저항과 투쟁을 상징하는 벽화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치며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완도수산고 3학년 이민욱 학생은 “이번 일정을 통해 완도와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리 선조들의 항일운동 정신과 그 뜻을 늘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며 소감을 말했다.

완도고 2학년 이호정 학생은 “소안도와 신지도에도 항일운동 기념탑이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부끄럽다. 완도에 돌아가면 꼭 들리겠다”며 완도에서 나고 자란 것에 대한 자긍심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일정을 마친 청소년 독립군 캠프 참가자들은 완도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분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전하며 짧은 시간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두가 무탈하게 집으로 향했다. /위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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