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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절차에 대한 이해: 변론주의와 원님 재판

이창환(변호사, 법무법인 공존 대표)

  • 이창환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4.16 01:21
  • 수정 2015.11.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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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변호사, 법무법인 공존 대표)

근대적인 재판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을 원님이 사적인 분쟁에 관련되는 사정을 두루 살펴 억울함이 없도록 판결을 내려야 했다. 이러 식의 재판을 ‘원님 재판’이라고 한다. ‘원님 재판’은 모든 것을 원님 혼자 알아서 하는 식의 재판을 말한다. 원님이 포청천인지 아니면 변사또인지에 따라 억울함을 당한 백성이 구제받을 가능성이 아주 딴판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면, 오늘날의 근대적인 재판에서는 이러한 책임이 모두 원고와 피고에게 맡겨져 있다. 이로 인하여 이길 수 있는 소송임에도 소송 당사자가 사실관계와 증거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지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법률용어로는 이를 ‘변론주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재판제도가 도입된지는 벌써 100여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재판에 대한 인식은 ‘원님 재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얼마 전 필자는 법정에서 변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앞 사건의 변론 내용을 들어보니 원고가 절의 부지를 매입한 후 그 철거를 청구하는 소송이었다.

피고: 원고는 탐욕으로 일제시대에 창건된 오래된 절을 철거하고 나무를 탐내고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천벌을 받을 일입니다.

재판장: 땅이 원고의 소유이고 피고에게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없다면 철거를 피할 수 없으니 피고는 법률전문가와 상의해서 주장을 제출해주십시오.

이런 식의 대화가 수차 되풀이 되고 있었다. 피고가 승소하기 위해서는 시효취득, 법정지상권 등 복잡한 법리에 대한 주장이 필요해 보였다. 피고 혼자서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변론주의라고 하더라도 재판장이 소송 당사자가 빠뜨리고 있는 점을 지적하거나 그에 대하여 질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을 하거나 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반대 당사자를 불리하게 하여 항의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기껏해야 재판에서 문제될 수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법률전문가와 상의해보라는 권고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원님 재판’의 관념에 익숙한 일반 국민들로서는 이러한 재판장의 불친절이 매우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민사소송 상고사건에서는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게 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모양이다. 중앙일간지에서 이를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로 비난하는 칼럼이 게재된 것을 보았다. 상고사건에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게 하면 그만큼 변호사의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칼럼의 필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필자가 목격한 예에서 보듯이 소송은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수행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상고심은 더욱 그러하다. 위 칼럼의 필자는 소송의 전문가인 변호사가 관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법원의 재판업무가 가중되고 법원의 역량과 예산이 낭비되는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의 재판업무가 과중하여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고법원을 신설하거나 대법관의 숫자를 현재의 두배, 세배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재판을 비롯한 사법제도의 특수한 성격을 간과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필요 이상으로 확산되고, 사법제도 개선 내지 개혁을 위한 논의가 산으로 가는 경향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